"엄마 따라온 거, 후회하지 않아?"
입원을 앞두고 짐을 싸다가 방문 앞에 서 있는 두 아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착한 아이들이라 대놓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애들 아빠와 달리 학원 한 곳 보내주지 못하고, 걸핏하면 병원 신세나 지는 엄마를 선택한 것을, 내심 후회하지 않을까 던져본 질문이었다.
"아니. 우리는 엄마가 있어서 좋아. 그러니까 건강하게 돌아와야 해."
후회하는 기색을 조금이라도 내비치면 미안하다고 사과할 생각이었는데, 긴장했던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다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왠지 용기가 생겼다. 머리를 여는 수술이든 뭐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야 했다.
◆가족 돌봄 그늘에 꿈 잃고 가정폭력 시달려
천주혜(가명·41) 씨의 아버지는 원양어선 선원이었다. 태평양으로 떠난 아버지는 배에 참치를 가득 싣기 전엔 돌아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만나면, 졸업할 때나 다시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생활비 한 푼 보태준 적 없었다. 결국 어머니가 친정에 주혜 씨와 남동생을 맡기고 식당 일을 하며 자녀들을 키워냈다.
척박한 삶 속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주혜 씨는 열 살 때 체육교사의 눈에 들어 육상선수로 발탁됐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출전한 경북도내 육상경기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하지만 육상선수의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당시 집에 찾아온 아버지가 주혜 씨의 외할아버지를 둔기로 폭행한 사건 탓이었다.
외할아버지는 가정에 소홀했던 사위를 늘 못마땅하게 여겼고, 이날도 사위에게 손주들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막다가 봉변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외할아버지는 크게 다쳐 1년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어머니는 일을 해야 했고, 외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있어 외할아버지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주혜 씨밖에 없었다. 결국 주혜 씨는 외할아버지 간병을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외할아버지를 돌보면서 동네 마트에서 근근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성년을 막 지난 스물 한 살, 주혜 씨는 결혼해 경기도에 있는 시댁에서 살았다. 숨 막히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선택한 결혼이었다.
그러나 도피처로 선택한 결혼 생활은 주혜 씨를 숨 막히게 했다. 시부모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아 별거 중이었고, 남편은 시아버지, 시누이는 시어머니 편으로 남매 사이도 갈라져 있었다.
며느리인 주혜 씨는 시아버지의 말도, 시어머니의 말도 거역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 부탁을 들어주면 남편 주먹에 코뼈가 부러졌고, 시아버지 말을 들으면 반대로 시누이에게 팔이 부러질 정도로 맞았다.
참다 못한 주혜 씨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임에도 남편과 이혼을 결심했다. 더 이상 이런 집안에서, 폭력에 시달리며 살고 싶지 않았다. 주혜 씨가 양육권을 갖는 조건으로 협의 이혼했다.
◆홀로 두 아들 키워…자궁암에 뇌하수체 종양까지
주혜 씨는 첫째 아들 지환이(가명·21), 둘째 아들 정환이(가명·15) 손을 잡고 고향 대구로 돌아왔다. 마침 해외로 일하러 떠난 친구가 비워뒀던 집을 내줘 길바닥 신세는 면했다.
어머니가 그랬듯, 주혜 씨 또한 홀로 두 아이를 키우려 어린이집 청소, 안경공장 사무직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래도 한 달 수입은 150만원에 그쳤다. 세 식구가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건강을 믿고 버텼던 주혜 씨에게 지난 2018년 덜컥 자궁암이 찾아왔다. 1년 반 동안 병원 신세를 지며 종양을 제거하고 한쪽 난소와 자궁 적출까지 3차례 수술을 받았다. 항암 치료도 16회나 이어졌다.
아이들과 모자가족보호시설로 옮겼고, 동시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입원 기간 동안 일을 하지 못해 생활비는 바닥이 났는데, 병원비로 1천만원이 나왔다. 돈이 없어서 자궁 적출 수술 후 매달 받아야 하는 주사 치료는 일부러 건너뛰었다. 그 때문인지 모자보호시설에서 보낸 5년 가운데 3년은 꼼짝 없이 누워 지내야 할 정도로 회복이 더뎠다.
보호시설을 나온 뒤 LH의 보증금 지원 덕분에 세 식구가 살 월셋집을 구했다. 주혜 씨는 인근 자활센터에서 도자기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힘겨운 나날을 버티고 다시 일어나는 데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희망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주혜 씨는 2021년 5월 급격한 시력 저하로 찾은 안과에서 뇌에 문제가 있다는 뜻밖의 진단을 받았다. 주혜 씨가 받은 최종 진단명은 뇌하수체 종양. 우선 종양이 시신경을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만 제거 수술을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난달 6일 주혜 씨는 잠을 자던 중 극심한 두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뇌출혈이었다. 게다가 종양 수술한 부위 반대편에 또 다른 종양이 생겼다는 충격적인 진단까지 받았다. 의료진은 입원을 강하게 권유했지만, 바닥난 통장 잔고를 생각해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주혜 씨는 여러 차례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을 찾아야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주혜 씨는 27일 급하게 수술 날짜를 잡았다. 종양이 신경을 누를 정도로 커져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술 도중 세상을 떠날 수도 있는 위중한 상태. 주혜 씨는 병상에 누워 대학생 첫째와 중학생 둘째를 떠올렸다. "이제 애들에겐 나밖에 없는데…." 주혜 씨의 눈에서 떨어진 한줄기 눈물이 베갯잇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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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가족·회사·건강 잃은 박병욱 씨에게 2,170만원 전달
이혼한 뒤 사업도 부도나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로 전락했는데 건강 악화로 폐암 의심까지 받고 있는 박병욱 씨(매일신문 2월 13일 10면 보도)에게 2천170만525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주)삼이시스템 10만원 ▷김현수 10만원 ▷김호근 5만원 ▷서위태 5만원 ▷진국성 5만원 ▷강종수 3만원 ▷김만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권두형 2만원 ▷박순애 2만원 ▷신종욱 2만원 ▷안현준 2만원 ▷문민성 1만원 ▷조금래 1만원 ▷조성연 1만원 ▷조현석 1만원 ▷하정현 2천400원 ▷'김나현쌤' 10만원 ▷'조금이라도돕기' 800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면증으로 일상과 미래 잃은 은아영 씨에게 2,271만원 성금
불우한 가정환경 이겨내고 로스쿨까지 합격했지만 기면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은아영 씨(매일신문 2월 20일 10면 보도)에게 51개 단체, 147명의 독자가 2천271만140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주)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박기태) 45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황금치과의원(박철기)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기독교대한성결교회봉산교회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박문흠이비인후과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주)(김용환)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키네마섬유(이필남) 10만원 ▷(주)명EFC(권기섭)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더리터 토곡한빛병원점 5만원 ▷법무사 황갑용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연합광고 (김천수)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이전호 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참한우소갈비집(신동애) 5만원 ▷채성기약국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피플라이프(박태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동신통신㈜(김기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서성상회(박형근) 2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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