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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초대석] 미국 없는 세계에서 한국의 선택은?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2월 10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돌발 발언은 자유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과거 "만약 우리가 돈을 내지 않고 러시아의 공격을 받으면, 우리를 보호해 주겠느냐?"는 한 유럽 정치지도자의 질문에, 트럼프는 "보호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독려(encourage)할 테니 돈을 내라고 했다"고 한다.

금전적 손해가 되면 어떤 동맹이든 헌신짝처럼 버리고, 적국의 침략까지 부추기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2020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의 대화였다. 자유에 대한 미국의 이상과 그 세계적 위상을 고려할 때, 상상하기 어려운 폭언이다.

트럼프의 재선은 2024년 자유세계의 안보에 가장 심각한 '공포의 시나리오'(Horror Scenario)가 되었다. 1945년 이후 지구촌이 세계대전 없이 자유와 번영을 누린 것은 '세계의 경찰' 미국 덕분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대통령 재직 시 그 근간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고, 세계무역기구(WTO)와 나토 탈퇴를 위협했다.

트럼프 정부의 전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는 트럼프의 안보 문제 이해력을 초등학교 5, 6학년생 정도로 평가했다.(B. Woodward, Fear, 2018) 백악관에서 그와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트럼프의 충동적이고 잘못된 판단을 견제하는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으로 불렸다. 하지만 세 사람은 차례대로 백악관을 떠났다.

트럼프의 재선은 특히 한국에 위협적이다. 트럼프가 한미동맹을 최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취임 초부터 한국, 일본, 독일의 미군 주둔을 비판했다. 위기감을 느낀 '어른들의 축' 3인은 국방부 특별 브리핑을 마련해 동맹의 가치를 설득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동맹을 "다년에 걸쳐 만들어진 하나의 큰 괴물"로 혹평했다. 또한 그는 미국과 타국 관계를 평가하는 12개 경제적 효용성 척도를 만들었는데, 한국은 최악을 기록했다.(G. M Snodgrass, Holding the line, 2019)

한국에 대한 트럼프의 부정적 시각은 견고하다. 그는 "한국은 우리를 심하게 이용해 온 나라(a major abuser)"고, 따라서 미군 주둔 비용을 매년 600억달러, 2019년 대비 60배는 더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렇게 손해뿐인 미군을 왜 주둔시켜야 하느냐고 물었다.

매티스 국방장관의 답은 '3차대전을 막기 위해서'였다. 미군이 철수하면, 중국의 야심과 북한의 호전성은 고삐가 풀릴 것이기 때문이다. 매티스는 회고록에서 "역사는 분명하다. 동맹이 있는 국가는 번영하지만, 동맹이 없는 국가는 망한다"고 역설했다.(CALL SIGN CHAOS, 2019) 동맹은 미국이 베푸는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한미군 철수는 트럼프 개인만의 엉뚱한 생각이 아니다. 맥락이 다르지만, 헨리 키신저도 찬성했다. 여기에 심각성이 있다. 키신저는 북한 핵에 맞서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하면 중국과 충돌해 3차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북한의 비핵화와 주한미군 철수를 교환하자는 것이다.

1949년 주한미군이 철수하자 곧바로 6·25전쟁이 일어났다. 1970년대 말 지미 카터 대통령도 주한미군을 철수하고자 했다. 최근 미국민의 여론도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미 외교 전문 싱크탱크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 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의 50%만이 한반도 유사시 미군 파견을 지지했다. 2021년에 63%, 2022년에 55%로 해마다 눈에 띄게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지정학 전략가인 피터 자이한은 한국에서 "미국은 분명히 손을 떼게 된다"고 경고한다. 미국이 떠나면 한국은 고통스러운 선택에 직면할 것이다. 조선시대처럼 중국의 지배에 복종하고, 안전을 보장받을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중국에 맞서려는 일본과 손잡을 것인가?

카터 정부의 전 국가안보보좌관 즈그비뉴 브레진스키는 일본과의 협력이 불완전하지만 최선의 대안이라고 본다. 일본이 적성 국가라는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 죽창가를 페이스북에 올린 조국 전 법무장관도 있다. 김일성은 생전에 적화통일을 하려면 미국과 일본이라는 갓을 벗겨야 한다고 말했다. 현명한 선택은 한국민의 몫이다.

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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