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2000명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2022년 7월 서울 대형병원 간호사의 뇌출혈로 인한 사망 이후 촉발되었던 '필수의료' 지원대책은 전공의의 병원이탈과 의대생들의 동맹휴학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이 상황은 2022년 12월 8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방안 및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하면서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 정부는 우리나라 필수의료가 처한 상황을 ▷중증‧응급 환자에 대한 대응체계 미흡 ▷분만‧소아진료 기반 약화 ▷필수의료분야 인력 부족 ▷필수의료 적정보상의 한계로 진단했다. 그러나 정부는 '필수의료 지원 기금'과 같은 별도의 재원마련 없이 급여기준‧항목 재점검, 공정한 자격‧부과제도 운영, 합리적 의료이용 유도, 재정 누수 점검 및 비급여 관리와 같은 건강보험 지출 효율화를 통한 지출개혁으로 건강보험 재원을 절감하여 필수의료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고, 이는 지난 1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우선 정부는 필수의료를 기피하게 된 이유로 ▷인력부족으로 인한 장시간 근로 및 번아웃의 일상화 ▷고위험‧고난도 시술로 인한 높은 의료사고 부담 ▷불공정한 보상으로 인한 비필수 분야와의 격차 세가지를 들고 있다. 정부의 이런 현황인식은 새로운 것은 없다. 문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과제로 든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로 그 안에는 인턴수련기간 연장, 개원면허제 도입, 급여‧비급여 혼합진료금지등과 같은 민감한 사안들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보다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의사 수 확대를 들고 있다. 정부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를 근거로 2035년까지 약 1만 5천명의 의사 수급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시행한 결과 약 2천명의 증원을 결정하였다. 이는 현재 의과대학 정원수가 3천58명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숫자이다.

'적정 의사 수'가 몇 명인가라는 문제는 의료계의 오래된 논쟁거리였다. 한 명의 전문의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의과대학,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라는 10년이상의 수련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급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급격한 증원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의 질'이다. 의대 교육은 '기초'와 '임상'으로 나누어지는데 지금도 기초교육을 담당하는 교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임상교육은 단순히 의대 졸업하고 의사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수련의, 전공의, 전임의의 교육과정이 필요한데 이들의 교육환경은 현재도 열악한 곳이 많다. 정부도 문제 해결을 위해 국립대 교수를 1천명 증원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현실적이지 않다. 현재와 같은 의료 환경에서 대학에 남으려는 젊은 의사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의과대학 졸업 후 10%정도는 더 이상의 수련을 포기하고 미용성형과 같은 의료행위로 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이 경력이나 시술의 난이도, 병의 중등도를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만 인정하고 있어서 힘든 수련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의료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의사의 수만 늘린다면 행위별 수가제에 따라 증가하는 의료비를 보험재정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를 것이다. 특히나, '서울대 위에 의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대 열풍이 강한 상황에서 의대정원 증원은 가뜩이나 R&D 예산 감축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이공계 우수 인력마저 의대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이제라도 적정의료 인력과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대해 '힘 싸움'이 아니라 생산적인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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