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설' 자리 없어 주저 '앉는' 지역 예술인들

문화부 심헌재 기자

"지역 예술인들을 위한 사업을 펼쳐 나갈 것입니다."

기자가 문화계의 수많은 기관·단체장 등을 만나 인터뷰를 할 때 꼭 하는 질문이 있다.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사업이 무엇이냐", 혹은 "가장 먼저 해결해야 될 과제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붉은 실'처럼 따라오는 대답이 있다. "지역 예술인들을 위해 일할 것이다. 그것이 나와 이 단체의 역할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저마다의 청사진에 대해 설명한다. 문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들이 그려 나갈 그림은 정말 아름다워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의 그림에 대해 지역 예술인들이 매기는 평점은 낮았다. 그들은 "요즘 지역 예술인들이 설 자리가 정말 부족하다. 이러다가 완전히 주저앉을 판"이라며 "무대에 설 기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 한 공연장 관계자는 "지역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10이라고 봤을 때 6, 7은 지역 예술인들의 공연, 그리고 나머지 3, 4가 초청 공연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 대구의 상황은 정반대"라며 "6, 7이 초청 공연이고 3, 4가 지역 예술인들을 위한 공연이다. 어쩌면 그 3, 4도 과장됐을 수 있다. 지역 예술인들이 느끼기엔 1, 2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한 문화계 고위급 관계자 역시 이 같은 상황에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그는 "지역의 시·구립 공연장 고유의 역할은 지역 예술인들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공연장들이 마치 기획사나 대행사처럼 초청하기에 급급하다. 공연장의 상황을 모르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각 공연장이나 기관들의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관객들은 결국 소위 '유명하고 비싼' 공연에 관심이 높고, 지역 예술인들의 공연은 그 반대다. 이는 자연스레 공연장의 수익이나 평가로 이어진다. 한 공연장의 고위 관계자는 "지역 예술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각 기관들도 그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한계는 분명하다. 수익을 내고, 이를 바탕으로 평가를 받는 입장도 분명히 있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몇몇 예술인들은 오로지 본인의 무대만을 신경 쓴다. 관객몰이의 몫을 모두 공연장으로 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관객 수에 신경 쓰지 않아도 공연장이 가득 차는 스타 예술인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관객이 많이 모여야 지역 문화인들에게도 다음 기회가 갈 수 있다. 단순 일회성의 공연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며 일부 지역 예술인들을 꼬집는 이도 있다.

저마다의 입장은 다르지만, 이들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같다. '지역 예술'이라는 '유리잔'이 깨지려 하고 있다는 것. 깨진 유리잔은 절대 원상복구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은 깨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의문이다. 이 유리잔, 누가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까.

현 상황의 책임을 어느 한쪽에만 물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역 문화계가 지금 힘들고, 이를 살려야 한다'는 사실엔 모두 통감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쪽은 문화계 각 기관과 단체들인 것은 사실이다. 각 기관과 장(長)들의 청사진이 '공허한 외침'에만 머물지 않길 바란다.

취재하면서 만난 누군가는 "지역 문화계는 이미 늦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예능인 박명수 씨의 말이 떠올랐다. "늦었다고 생각할 땐 너무 늦은 거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시작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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