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의대 열풍과 과거(科擧)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의대 정원 확대를 놓고 전공의들과 의대생, 의협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가 의사들의 권익을 침해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금의 의대 열풍은 고려·조선시대에 선비들이 과거(科擧)에 매달리던 것과 닮은 점이 많다. 우선 합격하기가 매우 어렵고, 국가의 인증을 통해 의사나 관리(官吏)가 되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한다는 점이다. 부(富)와 명예도 대체로 보장된다.

과거에 합격하기 위한 공부, 수능시험 공부, 의대 공부는 모두 기존에 확립된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조선시대 선비들 중에 과거에 합격한 후 새로운 학문을 연구하거나 창조적 연구 활동을 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 결과 조선은 어둡고, 뒤처지고,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한국 의사들도 비슷하다. 의대 공부를 마친 후, 의사들 대부분은 새로운 연구보다는 진료에 임한다.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지식을 창출하거나 새로운 사회적 부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확보되어 있는 지식을 활용하여, 기존 사회에 존재하는 부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다.

미국의 의료(건강)산업은 GDP의 17%에 육박한다.(2021년 통계) 미국 제조업이 GDP의 11%인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규모다. 물론 미국인들의 의료비 비중도 높지만 신약과 치료 기구, 치료법 및 질병 연구에 종사하는 의사들, 법무법인에 소속돼 의료 분쟁에 임하는 의사들도 많다. 의사들 대부분이 환자 진료에 임하는 한국과 많이 다른 점이다.

조선이 과학혁명을 이루지 못하고, 근대화에 실패한 원인은 복합적이다. 그중에 '과거제'가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의 인허가로 권한을 독점하고 부를 보장받는 '제도'는 사회 안정성 확보에 도움이 되지만, 엘리트들의 새로운 도전과 창조성을 억누른다는 말이다.

공부를 가장 잘하는 인재들이 연구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회적 부를 자신이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 다투는 사회는 전망이 어둡다. 뛰어난 인재들이 한국의 포스트 산업 창조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연구 지원이 절실하다. 또한 지금보다 더 많은 의학도들이 사회적 부를 키우고, 인류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 도전하는 기상을 가져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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