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대백에서 만나자

박상봉 시인

박상봉 시인

나는 강원도 화천초등학교에 다니다가 1967년 여름에 대구로 이사 왔다.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 어린아이의 눈동자 속으로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때 기차라는 괴물을 처음 봤다. 화천에서 춘천을 거쳐 서울로 와서 친척 집에서 1박하고, 다음날 새벽 전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서 거대한 증기기관차를 타고 저물 무렵이 돼 대구역에 도착했다.

그 당시 대구역사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어린 내가 대구에 첫발을 디딘 날 대구역사는 중간에 부분 보수되긴 했지만, 외형은 백 수십 년 전에 처음 지어진 건물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옛날 사진에 보이는 본 건물과 오른쪽에 붙은 청기와 지붕의 부속 건물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 무렵 대구백화점에 구경하러 간 적이 있다. 동성로 중심에 10층짜리 건물이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솟아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계단이 움직이고 사람들이 계단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다니 상상조차도 해보지 못한 일이 눈앞에 펼쳐져 마치 미래에 온 것 같았다. 대구백화점은 대구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대백'이라는 이름으로 향토기업이자 친숙한 브랜드로 사랑 받아 왔으나 2021년 6월 30일 영업을 마지막으로 휴점에 들어갔다. 말이 휴점이지 쉼표라기보다는 마침표가 아닌가 싶다.

대구 시민이라면 누구나 쇼핑의 명소인 동성로의 대구백화점을 기억할 것이다. 건물을 지을 때만 해도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백화점으로 1990년대까지 지역의 대표 유통업체로 손꼽히던 곳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다른 지역 백화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아도 대구백화점은 살아남아 8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켜왔는데 불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대구의 가장 큰 번화가인 동성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바로 대구백화점이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만날 때 주로 '대백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던 그 '대백'이 없어지면서 정겨운 '만남의 장소'도 이제는 추억의 뒷장으로 밀려났다. 마냥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청춘은 사라져버리고 빛바랜 시절 이야기조차 달아난 기차 꽁무니처럼 소실점 하나 남기고 멀찌가니 가고 있다.

추억은 난로다. 어느 먼 날의 추억 한 장 떠올려보면 가슴이 훈훈하게 데워지는 것을 느낀다. 사는 게 힘들 때, 인생의 파고가 험난할 때, 한때 아름다웠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시련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인생의 험난한 파고를 헤쳐나갈 수 있는 희망을 품게 된다. 백화점은 문을 닫았으나 앞으로도 '대백'이 대구 시민들에게 추억의 장소로 계속 남아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