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이승만 박사, 부통령 이기붕 선생을 추대하자' '4선 절대 지지' '리 대통령 각하 만수무강'. 장대 높은 플래카드, 태극기 물결…. 3·15 정·부통령 선거를 앞둔 1960년 3월 5일 대구역은 인산인해였습니다. 대한반공청년단, 교직원, 부인회, 각급 기관에서 삼척동자까지 수만 명이 운집했습니다. 이 대통령을 보려는 인파였습니다.
노장(85세) 이승만은 애당초 연설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 전 선거도 그랬습니다. 2월 27일 자유당 첫 지방유세(대구)날 그는 휴양차 진해 별장으로 갔습니다. 부통령 후보 이기붕도 마찬가지. 건강이 좋지 않아 지방을 순회하는 출마인사가 전부였습니다. 선거유세는 모두 당무위원들이 도맡았습니다.
민주당은 장면 부통령 후보가 직접 뛰었습니다. 대구(2월 28일)·부산(29일)에 이은 전주(3월 2일)·광주(3일)연설 모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대구 학생데모를 부른 일요등교(28일) 지시가 되레 민주당 유세장를 달궜습니다. 여기에다 장면을 친일파로 매도하려는 '국민복 차림의 장면' 벽보 사건이, 3월 3일엔 경찰의 '선거운동기본요강' 부정선거비밀지령문이 폭로됐습니다.
다급해진 자유당은 전략을 바꿨습니다. 이승만이 직접 등판키로 했습니다. 이른바 진해~서울간 역두(驛頭) 연설회. 진해 별장에서 열차로 이동하면서 역에서 연설한다는 긴급 처방이었습니다. 이날 낮 12시 25분, 우렁찬 만세 소리에 대구역에 특별열차가 도착하고 이 대통령이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우리나라가 제일 급한 일은 남북 통일입니다. 금수강산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놓아야겠는데 우방들은 화평해야 한다 하므로 북진통일을 참고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민족을 다시 노예로 만들 생각을 말고 뺏아간 귀한 국보들을 내놓아야 합니다."(1960년 3월 6일 자 매일신문). 첫 일성은 '선거'가 아닌 '외교'였습니다. 대선후보라기보다 현직 대통령의 메시지였습니다.
"부통령 선거에 자유당에서 이기붕 씨가 좋다고 해서 허락해 주었는데 합심해서 잘 일해 나갈 것입니다". " 자유·민주 두 정당은 서로 원수로 생각지 말고, 서로 싸움만 하면 절단 나는 것은 나라이니 함께 잘 해 나가야…."
의외였습니다. 연설은 초조한 자유당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앞서 2일, 장면 친일파 벽보 사건에 이 대통령은 "일국의 부통령을 그렇게 대접해선 안 된다"며 벽보를 모두 뜯게 했습니다.
또 일요등교 지시도 "잘못"이라며 시정토록 했습니다.(3월 3일 자 동 신문). 6년 전, '사사오입 개헌'으로 12년째 권력을 쥐고 있는 그였지만 백발 노장의 이날 연설은 시종 담담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대구역 연설은 3·15 정·부통령 선거 첫 연설이자 그의 정치 생애 마지막 선거연설이었습니다.
역두 연설로 한숨 돌린 자유당은 '이기붕 당선' 고삐를 더 잡아챘습니다.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곳곳에서 부정선거비밀지령설이 삐져나와 신문 활자로 드러났습니다. 투표일인 3월 15일. 올 것이 오고 말았습니다. 우려했던 일이 기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계속〉
댓글 많은 뉴스
"촉법인데 어쩌라고"…초등생 폭행하고 담배로 지진 중학생들
대구경북 대학생들 "행정통합, 청년과 고향을 위해 필수"
"죽지 않는다" 이재명…망나니 칼춤 예산·법안 [석민의News픽]
국힘, '한동훈·가족 명의글' 1천68개 전수조사…"비방글은 12건 뿐"
선거법 1심 불복 이재명, 상법 개정 '공개 토론' 제안…"직접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