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엔 남성들의 계(契)가 많았다. 어떤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모임을 만들어 소규모 집단을 배타적으로 형성해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었다. 같은 관청에 근무한 동관(同官)계, 과거 합격 동기생들의 동방(同榜)계, 나이가 같은 관료들의 동경(同庚)계, 국가 행사에 함께 참여한 도감(都監)계 등이 있었다.
조선 전기에 많았던 관직을 기반으로 한 계회는 족자 형태의 계회도(契會圖)로 그려지며 결속의 증거가 되었다. 계회도는 계의 이름을 쓴 표제, 모임의 장면인 그림, 만남을 기리는 시문, 계원 명단인 좌목 등으로 구성된다. 계원의 숫자대로 같은 그림을 그리게 해 각자 보관했다. 계회도는 시서화가 한 화면에 있는 독특한 회화이자 기록물이다.
조선 후기에는 시(詩)를 매개로 문인의 아취를 공유하는 친목모임인 아회가 많았다. 아회의 내용은 시 짓기, 거문고 타기, 글씨 쓰기, 그림 그리기, 차 마시기, 꽃 감상하기 등 다양하다. 아회가 그림으로 그려진 아회도(雅會圖)는 화첩 형식이 많아서 표제, 시문, 명단 등이 있는 것은 같지만 각각 독립된 면에 실렸다.
'수갑계회'는 1814년 서울에서 있었던 동갑계인 갑회(甲會)를 기록한 '수갑계첩'(총 39면) 중 그림 부분이다. 계원 22명은 모두 경아전 서리로 1758년에 태어났다. 서울의 중앙관청인 경아전은 90여 곳 정도였고 말단의 실무담당자인 서리는 1천200여 명 정도였다. 이들 중에서 나이가 같다는 공통점으로 22명이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이다.
모임의 장소는 제용감 서리인 정윤상의 집이다. 제용감은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직물의 직조와 염색, 공급을 맡은 관청이다. 팔작지붕과 대청의 크기, 기와를 얹은 담장, 중문과 문간채 등을 보면 대단한 저택이다. 계원들은 벽을 등지고 둘러앉았고, 오른쪽 누마루엔 이 모임의 핵심인 듯한 5명이 따로 모여 있다. 한 명은 문서를 보는 중이다.
인물은 김홍도의 풍속화풍을 따랐고 건물은 자를 대고 그었다. 다채로운 수목 표현이 운치를 돋운다. 궁중 행사도를 그려본 화원의 솜씨다. 대청 가운데엔 악사들이 자리 잡았다. 거문고 1, 대금 1, 피리 2, 아쟁 1, 장구 1 등 삼현육각의 6인조 구성이다. 기녀와 부채를 든 인물은 소리꾼인 듯하고, 마루 아래 두 명의 소년은 무동(舞童)으로 보인다. 오른쪽 아래 찬방에서 각상(各床)이 나오는 중이다.
경아전 서리는 중인이다.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계회, 아회가 중인으로 확산되면서 이들의 모임도 그림으로 기념됐다. 조선 후기가 되면 중인이 실력자로 부상하며 동료들과의 결속과 유대를 필요로 하는 권력 집단이 된 것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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