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공천 파동은 한국 대의민주주의(代議民主主義)가 훼손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선거, 어느 정당이든 공천 잡음은 있기 마련이다. 친명이 비명 세력을 쳐내는 것과 같은 일은 이전에도 있었다. 4년 전 친문(친문재인)은 반친문을 쳐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새천년민주당이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쪼개졌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동은 성질이 다르다.
'민주주의'는 '구성원 간 이견과 갈등을 다수결로 해소하고, 합의하는 제도'다. 그러나 국민들이 현안마다 일일이 투표하기에는 현대 국가가 너무 복잡하므로 현안마다 직접 투표하는 대신 대의민주주의를 운용한다. 국민을 대표해 정부와 의회가 정책을 마련하고, 검증해, 승인 또는 거부하는 것이다. 국민은 그 과정을 포괄적으로 평가하고 지지 여부를 투표로 보여준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은 정당(政黨)과 정당정치(政黨政治)인 것이다.
지금 민주당의 행태는 대의민주주의 미명 아래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행태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은 진보당, 새진보연합, 연합정치시민회의와 함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반(反)대한민국 세력·종북 세력 후보 10명을 당선 안정권에 배치하기로 했다. 또 지역구 후보를 진보당 후보로 단일화(울산 북구)했거나 전국 72곳에서 단일화를 진행 중이다.
지역구에서 자력으로 당선될 수 없는 세력, 준연동형비례대표제에서도 3석 이하일 것으로 보이는 세력에 10석 이상 내주는 포석을 깐 것이다. 이것이 국민들이 국가 현안에 일일이 투표하는 대신 정당에 그 임무를 맡기는 대의민주주의에 부합하는가? 그렇게 국회에 진출한 세력이 4년 내내 극한투쟁으로 한국 사회를 흔들고 정국을 마비시키며, 반미(反美)·반일(反日) 투쟁을 벌이도록 하는 것이 국민이 22대 국회에 부여하려는 임무인가?
많은 유권자들이 출마 후보를 일일이 살피지 않고 그들이 속한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것은 정당의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기능을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금 게이트 키핑 역할을 하기는커녕 정당정치를 이용해 민주주의를 훼손하려고 한다.
공천이 진행되면서 민주당을 이재명 사당(私黨)이라고 비판하며 탈당하는 의원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 대표를 앞장서서 도왔는데, 후회한다'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단식도 하고, 최고위원직도 던진다. 제3지대 정당과 물밑 접촉하는 의원도 있다. 이들은 신뢰할 수 없는 의원 평가와 여론조사, 비선 회의 등을 들며 이 대표를 비판한다.
민주당의 이재명 사당화·대의민주주의 파괴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 후 곧바로 인천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이후 당 대표 출마, 이 대표에게 유리하도록 당헌·당규 개정, 방탄 국회 등 사당화 행태를 보였다. 지금 울분을 토하는 민주당 의원들은 그 상황을 목도하면서 뭘 했나? 상당수가 이 대표를 편들지 않았나? 공천을 기대하며 민주당 사당화에 눈감은 것이다. 이제 와 터져 나오는 울분과 반성은 너무 늦었고, 공허하다.
울분과 후회가 공천에서 배제된 국회의원들만의 몫일까. 정치인들은 다른 직업을 구하면 된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 왜곡·훼손에 따른 국민 피해는 그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처럼 묵인하고, 뒤늦게 후회해 봐야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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