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8월 23일 독소불가침조약 체결 후 스탈린의 대(對)파시즘 정책은 180도 바뀌었다. 나치는 박멸의 대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이를 나치에게 보증하기 위해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망명한 독일 공산주의자들을 나치로 넘겼다. 그 수는 무려 800명에 이른다.
그리고 프라우다를 비롯한 선전 기관의 기사나 성명에서 파시즘에 대한 공격은 물론 파시즘이란 표현 자체가 사라졌다. 이어 세계 각국 공산당에 독소불가침조약은 평화를 위한 결단이라고 선전하고, 파시즘 공격을 중단하고 나치 독일에 맞서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를 '전쟁 도발자'로 비난하라고 지시했다.
소련 밖의 공산주의자들은 처음에는 당혹해했지만 곧바로 소련의 새로운 노선을 충실히 따랐다. 세계 공산당의 국제적 조직체인 코민테른은 독소불가침조약이 "히틀러에 대한 서방의 유화책 앞에서 소련에 열린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프랑스 공산당 지도자 모리스 토레즈는 나치가 프랑스를 침공하자 모스크바 방송을 통해 프랑스군에 나치에 저항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소련에 망명한 독일 공산당의 아부는 더 낯 뜨거웠다. 독소불가침조약은 '국제적 긴장 완화에 기여하는 소련의 평화 행위가 거둔 결실'이라고 치켜세웠다. 그 중심 인물로 훗날 동독의 최고 권력자가 되는 발터 울브리히트는 특히 더했다. "소비에트연방과 독일의 조약은 독일 파시즘을 소비에트연방의 발아래 두는 것으로, 세계 노동계급을 지지하는 것이며 소비에트연방을 둘러싼 거짓말과 모순된다."
국내 종북 단체 수장 역할을 해온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 본부의 행태가 딱 그 꼴이다. 북한 김정은이 지난해 "북남 관계는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며 통일 추진 기구를 모두 해산하라는 방침을 내리자 자진 해산하고 '한국자주화운동연합'(가칭)을 건설하겠다고 했다.
운동 방향을 '통일'에서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 '반제자주'(反帝自主)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대의에 대한 배신이었던 독소불가침조약을 찬양한 서구 공산주의자들의 스탈린 맹종(盲從)을 빼다 박았다. 가히 김정은에 조종당하는 로봇이다. 좌파는 이런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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