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최근 친족 간 혼인 금지 범위를 8촌에서 4촌 이내 축소 방안 검토 소식에 유림이 강하게 반발했다. 강한 반발에 화들짝 놀란 법무부는 "개정 방향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법률 개정 시한을 올 연말로 제시한 탓에 법무부가 조만간 개정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개정안이 나오면 또 한 번의 사회적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미국에서 결혼하고 보니 6촌 사이
현재 민법은 8촌 이내의 혈족 간 결혼을 금지한다(809조 1항). 혼인한 경우 무효(815조 2호)라고 규정한다.
헌재는 2022년 10월 27일 민법 809조 1항에 대해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반면 이 조항을 어기고 혼인한 것을 무효로 보는 민법 815조 2호에 대해선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로 결정했다. 혼인 무효 규정을 계속 적용할 수 있는 시한을 올해 12월 31일로 정했다. 연말 전에 법 개정을 권고한 것이다.
당시 헌재가 헌법불일치 판단을 내린 사건이다. A씨와 B씨는 미국에서 결혼을 했고, 2016년 귀국한 뒤 혼인신고를 했다. 이후 이혼 소송을 벌이는 과정에서 합의 이혼에 실패하자, B씨가 A씨와 6촌 사이인 점을 내세워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이혼소송 1·2심에서 이들의 혼인이 무효라는 판결이 나자 A씨가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즉 원래 8촌 이내랑 결혼한 것은 무효이지만 A씨의 경우 혈족 관계를 처음에 몰랐고 외국에서 결혼한 만큼 혼인 사실 자체는 인정된다고 봤다. 이는 헌재가 1997년 동성동본 금혼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이후 두 번째로 혼인 범위에 대해 내린 판단이다.
법무부는 헌재가 제시한 개정 권고 시기가 다가오자 혼인 금지 범위 등을 연구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결과 보고서도 받았다. '친족 간 혼인의 금지 범위 및 그 효력에 관한 연구' 보고서는 '혼인 금지 범위를 기존의 8촌 이내 혈족에서 4촌으로, 6촌 이내 인척에서 직계 등으로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혈족은 부모와 자식 등을 포함해 혈연관계를 맺은 사람을, 인척은 배우자 혈족 등 혼인을 통해 맺어진 관계를 뜻한다.
보고서는 다른 국가의 사례도 들었다. 독일과 영국 등 유럽 국가는 인척 간 혼인 금지 조항 자체가 없다. 일본은 직계혈족 및 3촌 이내 방계혈족, 중국과 필리핀 등은 직계혈족과 4촌 이내 방계혈족만을 제한한다.
보고서는 또 근친혼에 따른 유전적 질환 발병률도 5촌 이상은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현대사회에서는 5촌 이상 혈족과 가족의 유대감이 현저히 감소한 데다 세계적 추세도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간의 혼인만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균관 등 유림의 반발
이런 연구 용역 보고서 내용이 알려지면서 유림이 강하게 반발했다. 성균관 및 유도회총본부와 전국 유림은 지난달 27일 "가족을 파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는 "8촌 이내는 당내간이라 하여 고조부를 함께 하는 가족"이라며 "근친혼의 기준을 급하게 변경하면 인륜이 무너지고 족보가 엉망이 되고, 성씨 자체가 무의미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법무부는 당장 연구용역을 중단하고 가족을 파괴하는 일을 멈추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종수 성균관장은 최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가정파괴, 인륜 붕괴를 막아야 한다. 유교 전통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 기준이다. 국민 정서상의 문제로 판단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최 관장은 "4촌으로 만약 제한을 한다면 5촌은 당숙이다. 당숙고모인데 이건 아니다"며 "4촌의 아들이 5촌인데 거기서 혼인을 하면 (유전적으로) 괜찮다, 4촌은 안 되고 5촌서부터 문제가 없다는 논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이미 8촌까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거를 더 낮춰서는 안 된다는 게 확고한 생각"이라며 "외국의 사례를 따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우수한 가족문화, 전통문화가 있고 또 우리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효가 충만한 가정을 이뤄나가는 데 우리 모두 힘을 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발 물러선 법무부
논란이 확대되자 법무부가 진화에 나섰다. 법무부는 지난달 28일 별도의 입장문을 내고 "아직 개정 방향이 정해진 것이 아니다"고 한발 물러섰다.
법무부는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언급하며 "친족 간 혼인 금지에 관한 기초조사를 위해 다양한 국가의 법제 등에 대해 전문가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등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족법 특별위원회의 논의를 통한 신중한 검토 및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시대변화와 국민 정서를 반영할 수 있는 개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법무부가 올 연말 전까지 법 개정을 위해서는 조만간 개정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고, 시대의 변화에 맞춰 개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근친혼 범위를 일부라도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경우 유림을 중심으로 강한 반대 목소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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