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이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처방 중 하나는 사혈(瀉血)이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 효용이 있는 것으로 통했다. 러시아 소설가 니콜라이 고골의 1836년작 '코'에는 주인공 이발사가 하는 일이 소개된다. 특기할 만한 건 정맥에 상처를 내 피를 뽑는 것도 수익원이었다는 점이다. 사혈로 뇌졸중도 예방한다고 광고해도 무리가 없던 시대였다.
전염병의 원인이 나쁜 공기 때문이라는 장기설(瘴氣說·miasma theory)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때는 중세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1847년 빈 종합병원 산부인과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가 산욕열로 죽어가던 임신부들의 시신을 부검하고 그들의 병세를 지켜본 결과 알게 된 게 손 씻기의 중요성이었다.
의술 발전사는 증세 호전이 초점이지만 통증 경감의 역사이기도 하다. 신이 주신 성스러운 감각인 통증을 인간이 없애려고 하는 건 불경이었다. 한 성직자가 클로로폼이라는 마취제를 사용한 의사에게 '여성에게 축복을 내린다는 미명 하에 만들어진 악마의 도구다. 하지만 결국에는 우리 사회를 냉담하게 만들 것이며 괴로운 순간에 신을 향해 외치는 가장 깊은 절규를 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건 1850년대였다.
서양 의학계는 1846년 존 워런이 에테르를 사용해 목 혹 제거 수술을 한 걸 세계 최초의 전신마취 수술로 본다. 다만 일본은 하나오카 세이슈(華岡靑洲)가 1804년 통선산(通仙散)으로 60세 유방암 말기 환자를 수술한 게 세계 최초라고 주장한다. 마취술의 발전 덕분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1853년 레오폴드 왕자 출산 때 산통에 떨지 않아도 됐다. 3년 전 아서 왕자를 낳을 때 왕실 고문 의사들이 강경하게 마취를 반대한 것과 다른 분위기였다. 클로로폼을 묻힌 손수건이 여왕의 얼굴에 덮였고 마취 효과는 53분 동안 지속됐다.
정부와 의사들의 대치가 장기화되며 '지금은 아프면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천하장사도 환자가 되면 의사 앞에선 철저한 '을'이다.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약자이기 마련이다. 요즘 들어 부고 소식이 잦은 건 순전히 기분 탓이겠지만 큰 병을 조기에 발견해도 대책이 마땅치 않은 게 기본값이 됐다. 시술의 통증을 참는 게 당연했던 때처럼 인내가 당연하다는 2024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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