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약속을 지켰다. 지난 주말,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민주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두 명을 뽑았다. 둘 가운데 여성 한 명은 앞 순위에, 남성 한 명은 뒤 순위에 배치하겠다고 한다. 임미애와 조원희가 그 주인공이다. 대구·경북을 대표할 민주당 국회의원의 등장은 이제 확실해졌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는 파란곡절이 많았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민주당에는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없어서 민주당의 대의 체제는 언제나 결손(缺損) 상태였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은 '동진정책', 노무현 대통령은 '전국 정당화 정책'이라는 전략 패키지를 내놓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전략적 그림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대구·경북 지역 민주당 안팎에서는 모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민주당은 이 지역을 사석(捨石)도 아닌 사석(死石)으로 아느냐?"며 민주당의 무(無)전략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은 이곳을 스스로 정치적 동토(凍土)라 불렀고 자신들의 일을 '독립운동하듯'이라는 말로 자조했다. 희망 없이, 기약 없이 일한다는 뜻이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 지역의 민주당 그룹은 선거 때마다 몸부림을 쳤는데, 최근 몇 년간은 새로운 시도를 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간의 활동이 이를테면 "이 지역에 비례대표를 배정해 달라"는 '청원 운동'이었다면 최근의 활동은 "이 지역의 왜곡된 대의 체제를 바로잡을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한다"는 '개혁 투쟁'이었다.
이 지역을 특별히 봐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보편적 정치 개혁 과제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진화한 정치적 실천이었다. 이런 주장은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만들자는 정치 개혁의 큰 흐름을 타고 힘을 얻었다. 이 지역에서 평생 민주당 활동을 하다가 애달프게 세상을 떠난 포항 허대만의 눈물겨운 사연이 민주당 내에서 울림을 만들었던 것도 보탬이 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간단치 않았다. 가슴 부풀게 했던 선거제도 개혁은 표류했다. 속절없는 논란만 계속되는 가운데 이 지역 민주당이 바라던 권역별 비례제, 석패율제 등은 현실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선거제도는 지난번 했던 준연동형으로 돌아갔다. 대구·경북 민주당의 대의 체제 결손을 치유하는 문제는 다시 민주당 지도부의 입만 쳐다보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대구·경북 비례대표 전략의 상자가 열렸다. 대구·경북을 비례대표 전략 지역으로 정하고 여기에서 남녀 두 명의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재명 대표가 고심 끝에 내린 결단으로 보인다.
이번 대구·경북 민주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선정은 몇 가지 의의가 있다. 첫째는 '시스템'을 통한 결정이었다는 점이다. 사전에 분명하게 정해 놓은 절차와 방법에 따라 후보를 정했다는 것이다. 체계적 절차와 방법에 따른 대구·경북 비례대표 후보 선정은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라 하겠다.
둘째는 '지역' 대표성을 분명하게 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부문' 대표와 '지역' 대표를 겸하여 어물어물 사후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대구·경북을 '전략 지역'으로 정의해 놓고 후보 선정 절차를 밟았다. 셋째는 대구·경북 지역 권리당원들의 뜻에 따라 후보를 정했다는 것이다. 지도부가 위로부터 결정한 것이 아니라 당원 주권에 기초한 민주적 선출 절차를 거쳤다.
'첫째는 시스템을 통해서, 둘째는 분명한 지역 대표성을 가지고, 셋째는 당원의 뜻에 따라 민주적으로 뽑힌' 대구·경북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정당성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것에 걸맞은 정치적 존재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을 기반으로 지역과 여의도에서 맹활약하리라 본다. 민주당의 이런 실험이 정치적 성과를 내어 이것이 대표의 뜻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제도로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궁극적으로 정치적 대표성, 비례성, 다양성을 실현하는 정치 개혁, 선거제도 개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민주당이 대구에서, 국민의힘이 광주에서 대의 결손을 치유하며 자신들의 대표를 당당하게 낼 수 있는 세상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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