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르포] "묵혀둔 거라도 주이소"…'9만 사과' 돼도 물건이 없다

안동 농산물공판장 가봤더니…
2, 3명 조 만들어 농가 수소문…창고 보관 중인 상품 출하 독려
"가격 올라 노났겠다 말하지만 농사 잘된 일부 농가만 득 봐"

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 사과 선별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과 공급이 현저히 줄면서 일부 선별함이 텅비어 있다. 윤영민 기자
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 사과 선별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사과 공급이 현저히 줄면서 일부 선별함이 텅비어 있다. 윤영민 기자

"사과 좀 보관하고 계시요? 보관만 하지 말고 출하 좀 부탁하니더."

13일 오후 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 사과 선별 작업과 상하차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경매사들은 농가에 사과 출하를 독려하는 전화를 돌리느라 분주했다. 사과 가격이 '금값'이 되자 어떻게든 공급량을 늘려 가격을 안정화하려는 것.

한 경매사는 "사과 값이 연일 오르고 있다 보니 조금이라도 비싼 가격에 사과를 출하하려고 창고에 묵혀둔 농가가 있어 전화를 돌리고 있다. 2~3명이 조를 짜서 사과를 보관하고 있는 농가를 수소문해 직접 찾아가 사과 출하를 독려하는 지경"이라고 전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전날 사과(후지·상품) 10㎏당 도매가격은 9만1천700원으로 사상 최고 가를 기록했다. 1년 전 가격(4만1천60원)과 비교하면 무려 123.3%나 올랐다. 게다가 이달 6일(9만1천120원)부터는 9만원대를 이어와, '9만 사과'라는 말까지 나온다.

같은 날 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에서는 특5 등급 사과 (20㎏·미얀마 품종)가 평균 15만6천668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같은 날 이 등급·품종 사과(20㎏)는 6만6천143원에 거래돼 1년 만에 약 2.37배(136.86%) 올랐다.

이처럼 도매가격이 1년 새 2배 넘게 뛰면서 도매상회는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공판장 내 한 도매상은 "사과 값이 올라서 득을 보는 곳은 비싼 가격에도 사과 구매 수요가 있는 백화점 말고는 없는 것 같다"며 "보통 도매상회를 찾는 손님은 싸게 사과를 구매하기 위해서 찾는데 기본 사과 값 자체가 비싸다 보니 사과를 사러 왔다가도 발길을 돌리기 일쑤"라고 울상을 지었다.

농가의 한숨도 깊다. 지난해 봄철 과수 저온 피해 탓에 사과 농사가 흉작이라 값이 올라도 팔 사과가 없어 실제로 쥐는 현금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봄철 이상기온으로 사과꽃 개화 시기가 10일 정도 빨라지면서 지역 농가도 큰 피해를 겪었다. 경북의 사과 주산지 청송은 지난해 3월 단 하루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정도로 온화해 꽃이 일찍 폈지만, 27일 서리가 내리면서 789농가 229㏊ 면적의 농작물이 피해를 보았다.

예천에서 사과농장을 하는 엄승일(58) 씨는 "사과 값이 올라 '노났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과가 없어 사과 값이 올랐기 때문에 농가는 사실상 비싸게 팔 사과가 없다"며 "사과를 오래 보관한 농가나 그나마 농사가 잘된 아주 일부 농가만 겨우 예년수준으로 득을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13일 찾아간 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 선별작업을 마친 사과사장자가 쌓여있다. 한 관계자는
13일 찾아간 안동농협 농산물공판장. 선별작업을 마친 사과사장자가 쌓여있다. 한 관계자는 "제철도 아닌데다 공급도 줄어 평소보다 현저히 적은 양을 작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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