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한국에 ‘기회’일 수 있는 트럼프 재림

송의달 서울시립대 교수

송의달 서울시립대 교수
송의달 서울시립대 교수

올해 11월 5일 실시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간의 4년 만의 재대결로 굳어졌다. 트럼프의 마지막 '대항마'이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가 이달 6일 공화당 예비후보를 사퇴하면서다. 바이든은 하루 뒤인 7일 국정연설에서 13차례에 걸쳐 트럼프를 "나의 전임자"라 부르며 맹공격함으로써 본격 포문을 열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가상 양자 대결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을 1~5%포인트 격차로 계속 앞서고 있다. 그러나 전국 총득표수가 아니라 확보한 선거인단 수로 당선자를 확정하는 미국 대선의 특성을 감안할 때, 현시점에서 승패 예단은 무의미해 보인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재선 확률이 4년 전보다는 높아졌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91개 혐의로 형사 기소된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지면 평생 수감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뛰고 있는 게 큰 원동력이다. 그는 일찌감치 '어젠다 47'이란 대선 공약을 내놓고 자신의 강점인 대중 연설·소셜미디어 소통·TV 인터뷰 등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트럼프 재림'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세계 각국 리더와 기업인, 외교관들은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이다. 정보력이 뛰어난 일본 정·재계에선 지난달부터 '거의 트럼프'(호보토라'ほぼトラ)를 넘어 '이미 트럼프'라는 뜻의 '모우토라'(もうトラ)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선 트럼프에 대한 연구가 빈약하고 그에 대한 인식도 편향돼 있다. '돈 때문에 동맹을 팽개칠 또라이' '미국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속물' '(재임 중) 하루 평균 15개 거짓말을 한 민주주의의 파괴자'·…. 여론 주도층조차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친민주당 성향 주류 언론이 퍼뜨려 온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수준이다.

트럼프의 실체는 어떠할까?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바이든 대통령의 '트럼프 따라 하기'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와 WTO(세계무역기구) 무력화 결정을 계승했을뿐더러 중국에 대한 압박·봉쇄는 더 강화했다. 올 들어 바이든은 불법 이민 문제에서 "국경 장벽을 건설하겠다"며 트럼프와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현실감 있는 정책으로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트럼프는 또 블라디미르 푸틴, 시진핑, 김정은 같은 독재자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그들에게 아첨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바이든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 재임 중 새로운 전쟁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미국은 러시아·중동·북한을 자기 의도대로 성공적으로 관리했다.

수조원대 재산에 결혼도 세 차례 한 트럼프는 술·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다. 정상회담장에서도 다이어트 콜라로 건배하며 〈거래의 기술〉을 포함해 19권의 저서를 냈다. 트럼프는 "나는 무엇을 할지 말하지 않는다. 나는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면서 중국 고전인 〈손자병법〉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미국인들의 필독서로 추천한다. 트럼프의 상소리와 허풍, 잘못된 주장에 미국의 소수 엘리트들은 눈살을 찌푸리는 반면, 서민·노동자들은 "속 시원하다. 우리들 마음을 대변한다"며 환호하고 있다.

트럼프는 재임 중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과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 요구 등으로 한국의 안보 불안감을 높였다. 하지만 그는 2017년 11월 8일 한국 국회 연설에서 "이단적 종교 집단 같은 북한이 핵무기로 (한반도 적화통일) 목표를 이루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한민국 방어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트럼프를 막말을 일삼는 '난봉꾼 정치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판인 것이다. 그는 미국과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 왔고 말 한마디도 '의도'를 갖고 하는 전략가이다. 지금부터라도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그의 정책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심도 있는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럴 때 트럼프의 재림을 한국에 '악몽'이 아닌 '기회'이자 '축복'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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