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전쟁은 스크린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건국 1세대의 희생과 투쟁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의 흥행몰이 이후 좌(左)와 우(右)의 다큐 전쟁의 불길이 번져가고 있다. '별들의 고향' 이장호 감독이 만드는 영화 '하보우만의 약속'은 이달 초 서울 마포구 박정희 대통령기념관에서 촬영을 진행했으며, 목표 개봉 시기를 내년 봄에서 오는 5월로 당겼다. 가수 김흥국이 제작사를 설립해 선보일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다큐도 상당 부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가운데 역사 전쟁으로 '잃어버린 진실'의 비판적 복권을 시도한 '바로 본 대한민국 정사(正史)'가 눈길을 끈다. 제목부터 문제적이다. 건국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왜곡을 바로 잡는 광정(匡正·잘못이나 부정 따위를 바로잡아 고침)의 대서사시다. 지은이가 오랜 기간 천착해온 한국 현대사의 쟁점 연구를 집대성했다.
언론인이자 현대사가인 박석흥 대한언론인회 논설위원장이 한국사 왜곡의 본질을 파헤쳤다. 전작 '역사전쟁'의 후속 편으로 한국 현대사의 망각된 진실 등을 찾아 비판적으로 되살렸다. 무대는 1948∼2023년까지의 대한한국이고 내용은 현대사이다.
건국 시점을 둘러싼 관점을 시작으로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돌아본다. 표지 사진으로 보면 안다. 대통령 사진 중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이 두드러진다. 구체적으로는 이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14명 집권기의 역사 파동을 다루며 실체적 진실에 다가간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김영삼‧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가 1948년 건국과 정통성을 부정해서 2022년 출범한 윤 대통령 집권 초기 사회는 규범과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진 아노미 상태다"라며 평가를 보류한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할애했지만 현대사와 관련한 비판적 시각이나 논조는 찾아 보기 어렵다. 최소한 역사에 있어서 만큼은 정통성이나 정체성을 부정하는 왜곡이나 폄훼가 없었다고 본 듯 하다.
지은이는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한 뒤 경향신문 학술문화부장과 논설위원, 문화일보 부국장 학술문화부장‧편집국장 대우 출판국장 겸 편집국 포럼 담당 국장을 지냈다. 이력에서 학인 되듯 대한민국 언론사 최초의 학술분야 전문기자로 1960년대 말부터 반세기 넘게 현장을 뛰었고, 의견기사 지면의 새 틀을 잡고 확장시킨 주역이다.
또 연세대 강사와 한국외대·대전대 겸임교수·건양대 대우 교수 등을 역임하며 강단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아울러 독립기념관 감사와 문화재위원회 무형문화재 위원‧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지도위원으로서 봉사하며 역사 전쟁의 맨 앞에 서 왔다. 저서는 '건국60년 한국의 역사학과 역사 의식'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재인식''한국 근현대사의 쟁점 연구' 등 다수.
지은이는 한국 현대사의 쟁점을 '연구'라는 현미경을 통해 다가간다. 크게는 '건국, 6‧25, 4‧19 역사적 진실'을 시작으로 '5‧16 군사 쿠데타와 패러다임 시프트' '제6 공화국' '국사 교과서 파동과 사관 논쟁' 등 4부에 걸쳐 18개 장 35개 항목으로 나눠 역사적 실체를 되살린다.
역사학자이자 대 논객이었던 천관우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과의 일화는 학술전문 기자로 맹활약한 박 위원장의 노력과 강단을 보여준다. 박 기자가 1972년 11월 당시 조총련계 였던 이진희 씨의 '광개토왕릉비의 연구' 결과를 보도하자 일부의 반박이 나왔지만 "(박 기자의 데스크에게) 좋은 기사"라고 전화해 옹호해 주었다. 서울대 사학과 인맥이 중심인 문헌고증 사학의 식민사학 찌꺼기 청산을 주제로 한 비판 기사가 보도된 뒤에는 "박 형, 당신 어떻게 책임지려고 이렇게 강하게 쓰느냐"라는 전화를 받고 당황한 적도 있고, 그 지적에 공감하기도 했다고 한다.
내용 중에는 김영삼 제14대 대통령이 1993년 8·15 경축사에서 "문민정부가 근대 국가의 주춧돌을 놓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정통을 이어 받았다"고 선언하며 1919년 임정 수립을 건국 기점으로 설정,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정통성을 부정했다는 지적이 보인다. 그런 역사 인식으로 오늘의 한국 사회는 1945년 해방 당시와 비슷한 혼란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4·19를 새롭게 증언하는 '국무회의록이 말하는 역사의 진실'은 저자의 대특종기다. 지은이는 3‧15 부정 선거 후 국무회의록을 발굴해서 실체적 진실을 그려낸다. 마산 앞바다에 김주열 군의 시신이 떠올라 제2차 마산사태가 있었던 다음날(4월 12일) 기록이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에게 "정부가 잘못하는 것인지, 민간에서 잘못하는 것인지 몰라도 아직도 싸우고 있으니 본래 선거가 잘못된 것인가?"라고 질문한다. 내무‧국방‧문교부 장관이 엉뚱한 대답을 하자 이 대통령은 "선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나", "혹 선거가 잘못되었다고 들은 일은 없는가"라고 3번이나 추궁해도 사실을 보고하는 장관이 없었다.
진실을 따져 묻던 이 대통령은 "지금 장관들 말은 안정 책이 못 된다. (국민이) 이 대통령을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 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는데 나는 내가 사면(辭免)하는 것"이라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승만은 3.15 부정 선거를 몰랐다. 4‧19 1주일 전 관계 장관들이 사실대로 보고했다면 학생들의 희생은 막을 수 있었다. 국무회의록의 이 기록은 4월 19일 자정에 매카너기 주한 미국대사가 본국에 보낸 보고 전문으로도 확인된다. 발과 땀으로 발굴해낸 기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6공화국 들어 좌편향된 근·현대사를 바로 잡는데 초점을 맞춘 부분이 두드러진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저자는 "제6 공화국처럼 국민의 역사 의식이 혼란스런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고 통탄한다.
다음은 박 논설위원장과 일문일답.
-집필 동기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과 국민 경험과 국제 시각에서 완전히 왜곡된 역사 인식의 실체와 그 교정은 물론 그런 역사를 만든 사관(史觀)의 실체와 배경에 대한 통합적 접근이 절실하다. '바로 본 대한민국 정사'는 지난 2021년 한국 근‧현대사 논쟁을 다룬 '역사전쟁'의 후속 편이다. 특히 한국 현대사의 왜곡된 진실과 망각 된 진실, 잃어버린 진실을 찾아서 이를 비판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을 역사학과 정부에 촉구하고 그동안 그 복권을 주장한 논의와 그 연구 결과를 서술한 것이다. 19세기의 전(前)근대와 식민지 시대를 지나고 6·25전쟁, IMF 국난도 극복한 격동의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대한민국은 왜 아직도 북한과 친북 반체제 세력의 국가 전복 도전에 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느냐를 밝히고 맹목적인 국가 전복 세력의 종북(從北) 활동을 바로잡고자 했다.
-대표적 역사 왜곡 사례는?
▶대한민국의 분단은 스탈린-루스벨트의 밀약과 김일성의 동조로 이루어진 것이고, 6·25 전쟁도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이 공모한 국제 전쟁이다. 건국 전후 폭동에 의한 민간인 피해도 스탈린 지시에 의해 시작됐음이 북한 점령 소련군 사령관 슈티코프 문서로 확인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948년 건국이 미 점령군과 친일파가 공모한 것"이라는 주장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북한과 브루스 커밍스의 거짓말 선전·선동을 복창하는 잘못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건국하고 6‧25 전쟁을 극복하며 산업화를 모색한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비방하는 건 바른 역사 인식이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은 전근대 식민지 국가를 근대 국가로 전환하고 현대 국가로 진행하는 기초를 다진 위대한 정치 혁명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정체성과 관련, 가장 의미 있는 연구를 꼽는다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정체성을 밝히는 논문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가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커밍스 수정주의 검증과 이승만 연구다. 유 전 위원장은 커밍스의 수정주의 가설을 분석하며, 커밍스의 네오마르크시즘에 의한 한국 현대사 왜곡이 566세대의 체제 전복론의 지침서가 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커밍스가 "해방 당시 한국이 사회혁명‧계급혁명이 성취될 여건이 성숙돼 있었다고 주장한 것은 허구며, 외세가 없었다면 한국의 사회혁명은 성공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오판이었다"고 밝혔다.
-교과서 왜곡이 특히 심각해 일본을 비판하기 민망할 지경인데.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2008년 노무현정부가 검인정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157건 오류를 시정하라고 출판사에 통보했고,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2013년 이명박·이주호·이배용·이성무 팀이 검인정 보급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오류 829건을 수정해야 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2년 중학교 역사 교과서 검정심의회 위원장인 송기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 책 당 수백 건의 오류가 발견돼 출판사에 수정을 권고했지만 국회의원들이 정치 이슈화해 바로 잡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주역이 분명하지 않은 보천보 파출소 습격 사건을 김일성 전투로 포장한 역사 교과서 기술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역사 교과서 오류를 교육부가 발표하긴 했지만, 후속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왜곡된 역사교육을 받은 세대가 문재인 정권의 파워 엘리트로 활약했다. 그들이 무엇을 잘못 배웠는지는 알게 해야 할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김 대통령은 취임 첫 해 "1993년이 민족사 복원의 원년이다. 문민정부가 제2의 광복 운동에 나서고 있다"며 "민족의 역사는 바로 서야 하고 민족의 자존심은 회복되어야 한다"고 천명했고, 1994년 3월 제6차 교육과정 국사 교과서 개정을 위해 마련한 '국사 교육 내용 전개 준거 안'에 '대구 폭동'과 '제주 4·3사건'을 '10월 항쟁'과 '제주 4·3항쟁'으로 바꾸는 시안을 발표해 국사 교과서 파동의 불을 붙였다. 이어 1997년 고시한 제7차 교육과정에 기존의 국사 과목을 그대로 둔 채 심화 선택 과목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신설 분리해 국사 교육을 패러다임 시프트 했다. 김 대통령은 이승만·박정희 통치를 우회하고 건국 전후 반란·반역·항쟁 등을 대한민국 정사로 바꾸는 이른바 '민족사 복원'을 6공화국에서 지속적으로 추진케 한 기본 틀을 깔아준 것이다. 민중 사관·분단 사관·수정주의 사관·전교조 사관을 포괄적으로 수용한 YS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좌편향 역사 교육의 이정표가 됐다. 제6 공화국의 역사 왜곡은 바로잡아야 한다.
-극복할 방법은 없겠나?
▶사실대로 기록하면 바로 잡힌다. 대한민국 역사를 분단·통일 저해 대상으로 상정한 뒤 극복 대상으로 보고 6‧25 승리와 산업화라는 위대한 성취의 대한민국 역사를 버려야 할 것으로 부정하는 자학사관으로 꾸며 세계가 부러워하는 역사가 부끄러운 역사로 뒤틀렸다. 지난 30년 6공화국 교과서 파동과 역사 전쟁에서 제기된 대한민국사 왜곡은 학문 외적인 정치적 사건이었다. 정치적 목적으로 거짓말로 꾸민 부분을 걷어내서 바른 교과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 작업은 국사학계의 한국사 연구를 기초로 정치학·사회학·철학·교육학 등이 참여한 학제적 토론을 거치면 가능해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 '체제 탄핵‧국가 전복'이라고 규정했다. 어떤 이유이고,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나?
▶노재봉 전 국무총리와 남시욱 동아일보 화정평화재단 이사장·김평우 변호사·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의 공통된 지적이다. 박근혜 탄핵 차원을 넘어 체제 탄핵이라는 게 이들의 분석이다. 청와대를 장악한 586 운동권은 건국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 국민 대신 사람(인민), 자유주의 시장경제 대신 전체주의·사회주의 경제를 지향하고, 국가의 기본 조건인 헌법 파괴와 안보 질서‧안보 동맹 등을 파괴하기 위해 문재인정권 말기까지 광분했다. 역사 교과서 왜곡은 물론 검찰 기능 박탈·군(軍) 무력화·북한 중국 예속화 위험을 국민이 걱정하는 정책을 남발했다.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대한민국사만 뒤틀린 게 아니다. 한국사를 새로운 눈으로 봐야 한다. 조선이 일본에 망하는 전 단계였던 조선 시대의 모순도 밝혀서 바람직한 역사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박 위원장의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출범한 140여 신생 독립 국가 중 건국·근대화·선진화를 제일 먼저 성취한 국가다. 국가 재정의 절반을 원조로 지탱하다가 개발도상국을 돕는 원조 국가 대열에 합류했다"는 대목에서는 비장함마저 엿보인다.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위대한 성취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은커녕 왜곡과 폄훼로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 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 주목할 만한 역저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송기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학문적‧교육적 견지에서 서술되어야 할 역사 교과서마저 정치 이념에 휘둘리고 있다. 역사의 현장에 가까이 있었던 기자로서 쓴 현대사 증언록이다. 특히 기록과 진실에 입각해서 역사를 바라보기를 역설하고 있다"고 했다. 양승함 전 한국정치학회 회장은 "1948년 건국과 정통성에 관한 제6 공화국의 담론을 역대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자의 정치적 발언을 중심으로 검증했다. 가려져 있던 진실을 밝혀 정치가들에게도 거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러시아사)는 "학술전문 기자로서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지키는 일에 반세기 이상을 투신해 왔던 저자가 평생의 업적을 총정리해서 하나로 모아 편집해 낸 것이 책의 주안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과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역사 교육은 결코 용납될 수 없고 되어서는 안 되며 크게 잘못된 현재의 역사 교육을 바로 잡으려면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야 되는데 그 어려운 일을 제대로 해 내기 위한 첫 걸음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100만 관객을 넘어선 건 2017년 '노무현입니다' 이후 7년 만이다. '건국전쟁'은 16일 현재 120만 명 돌파가 눈앞이다. 이 돌풍은 역사적 실체와 진실을 갈망하는 국민의 성원을 확인하게 하는 방증이다. 영화 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바로 본 대한민국 정사'는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영화 이상으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다큐다.
글방과책방. 440쪽, 2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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