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50> 미하일 글린카-발라키레프, 종달새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미하일 글린카의 종달새 악보. 서영처 교수 제공
미하일 글린카의 종달새 악보. 서영처 교수 제공

미하일 글린카(Mikhail Ivanovich Glinka, 1804~1857)의 <종달새>는 12곡으로 이루어진 가곡집 『상트 페테르부르크와의 이별』 중 10번째 곡이다. 음악은 통상적으로 시에다 곡을 붙이지만 글린카는 먼저 곡을 완성한 뒤 친구 네스토르 쿠콜닉(1809~1868)의 시를 곡에 맞추었다. 왼손의 저음은 넓게 펼쳐진 평원을 그린다. 그 위로 종달새가 날아오르는 가없는 하늘이 펼쳐진다. 평온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는 글린카가 보냈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의 행복했던 시간을 회상한다. 글린카는 들판의 종달새를 자세히 관찰하고 노래, 날갯짓, 비행선을 음악적으로 기록했다. 그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보낸 기쁨과 격동의 순간들이 종달새의 노래 속에서 교차한다. 글린카에게 페테르부르크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미련이 남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하는 곳이다. 글린카는 종달새를 내세워 페테르부르크의 풍경과 그곳에서의 추억을 전달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새의 노래 들리네./ 근원도 없이 솟아/ 크게 더 크게 쏟아지네./ 들녘 멀리 종달새는 보이지 않고,/ 노래 소리만 들려오네/ 종달새가 노래하네./ 바람이 노래를 실어오네./ 누구의 노래인지/ 누구를 위한 노래인지, 알게 되리라!/ 울려라, 나의 노래여,/ 달콤한 희망의 노래/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몰래 한숨 쉬겠지.

글린카의 종달새는 가곡보다 발라키레프(Milii Alekseevich Balakirev, 1837~1910)가 편곡한 피아노곡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발라키레프는 글린카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러시아 5인조의 일원으로 러시아 국민주의 음악의 이념을 정립시켰다. 피아노 악보를 펼쳐놓고 들으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음악은 청각적이지만 음악 문자는 언어 문자보다 더 시각적이다. 악보는 오선 위 12 음역의 높낮이를 아르페지오로 표현하며 드넓은 평원과 가없는 하늘, 종달새가 솟구치고 곤두박질하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트릴은 종달새의 날갯짓과 노래를 표현한다. 이것은 건반 위를 자유롭게 오가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기도 하다.

텅 빈 하늘로 종달새가 날아오른다. 종달새는 봄을 알리며 온몸으로 타종한다. 종달새는 순간이라는 단 하나의 현실만을 갖는다. 봄날의 순간은 지속하지 않는다. 종달새가 비상하는 수직적인 순간은 일상의 수평적인 시간과 다르다. 비상과 하강은 창조적 생명이 용솟음치는 시간이다. 종달새의 시간과 공간은 인생의 상승과 굴절, 완만한 곡선을 동시에 보여준다. 종달새는 현실의 잡다한 조건들을 극복한 해방된 자아이기도 하다.

종달새의 현재는 종달새의 모든 것을 응집한 시간이다. 종달새는 생을 긍정하고 신뢰한다. 맑고 투명한 소리로 생명에 대한 신앙을 들려준다. 제가 예쁜 꽃인지 모르는 꽃처럼, 종달새는 자기 몸속에 지닌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모른 채 노래 부른다. 다음 봄이 올 때까지 이 작은 신체가 만들어 내는 노래의 여운을 간직한다. 일용할 양식 같은 음악을 들으며 봄을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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