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높게 솟은 나무 기둥 사이, 두 마리의 독수리가 텅 빈 둥지를 향해 마주하고 있다. 무대의 주인공처럼 시선을 집중시키는 텅 빈 둥지. 성태향 작가의 설치 작품 '중간정원'은 이 텅 빈 둥지를 통해 자연 생태계의 위기를 은유한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독수리의 둥지가 비어있음은 곧 생성과 소멸의 순환 과정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또한 뼛가루를 나무 아래에 뿌리거나 안치하는 수목장, 조류에게 맡겨 자연적인 처리를 도모하는 조장(鳥葬)을 상징화해 삶과 죽음의 순환, 자연으로의 회귀 등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텅 빈 둥지를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연생태계의 순환 고리가 사라져가는 인간의 욕망을 포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정명주 협력기획자)
봉산문화회관 20주년 기획전 '자연으로부터'가 1~3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봉산문화회관의 '유리상자-아트스타' 공모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들을 재조명해 그간의 예술적 성장과 창작의 변화를 기록하는 'GAP(Glassbox Artist Project)' 전시다. 정명주 협력기획자와 성태향, 이시영, 이재호, 이창진, 최성임 작가가 참여한다.
전시의 주제는 '자연으로부터'. 자연을 훼손하고 유해물질을 생산, 폐기하며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인간의 욕망을 경고하고,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관계를 예술가적 시각으로 보여준다.
이재호 작가는 무심코 지나치거나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잊히는 풍경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금호강변을 산책하며, 점점 사라져가는 자연이자 생명의 순환인 풍경의 단편을 채집하듯 그려낸다.
구, 직선, 원통 등 자연의 모양새를 차용해 설치 작업을 하는 최성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빛을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백색 조명 아래 늘어뜨린 수십개의 망은 마치 생명을 품은 알과 같은 투명한 공들을 품고 있다. 속이 텅 빈 나무 속에서도 또 다른 생명이 둥지를 틀고 자라듯, 생명을 품었다 껍데기가 되고 다시 자라는 순환의 과정과 유기적인 연결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외에도 직접 손으로 잇고 엮어 만든 작가의 설치 작업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창진 작가의 작품은 멀리서보면 하나의 풍경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다양한 그림들의 콜라주 형태다. 온·오프라인 중고장터나 무료 나눔 등을 통해 수집한 작품들의 부분들을 붙여 만들어낸 거대한 풍경화는 버려지고 사라지며 변화하는 시대의 기억이자 풍경이다.
3전시실에 들어서면 수백개의 자작나무 조각들을 조립해 만든 건장한 남성 신체 조형물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거나 생각에 잠겨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시영 작가는 작품의 표면을 검게 그을리고 태워서 나무의 물성을 극대화하며, 탄생과 성장, 퇴화와 죽음 등 인간의 삶을 포괄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정명주 협력기획자는 "이번 전시에는 급변하는 기후위기 속에서 미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작가들의 고민과 호흡이 담겨 있다"며 "자연으로부터 시작되는 변화 속에 미술은 어떻게 생태적 균형을 실천해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4월 7일까지. 053-422-6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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