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심채경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잡았다. 남들은 진즉에 읽었고 차고 넘치도록 리뷰가 떠다니는 베스트셀러를 이제야 손 댄 건 나까지 장단에 춤출 필요가 있을까, 하는 삐딱한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심채경은 자기 책에서 "결국, 나는 한 번도 '코스모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못했다"고 고백하더니 완독에 실패한 이유를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흐르는 우주에 대한 찬탄의 정서, "뭐 꼭 나까지 그렇게 같이 좋아야만 하는가 싶은"(84쪽) 때문이라고 밝힌다. 하기야 완독을 한 나 역시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주에 대한 신비와 호기심을 품게 만들었고, 난생 처음으로 지구 밖의 것을 잠시나마 생각했다는 경험 뿐.
천문학자 심채경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편집자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이 화제를 불러일으켜 베스트셀러가 된 바탕. 이를테면 잘 팔리는 책을 만든 건 저자 심채경의 능력이겠으나 적재적소에 깔밋한 문장과 단어를 채워 넣은 편집자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책은 저자가 대학에 들어가 토성의 위성 타이탄 연구로 학위를 취득하고 불안정한 고용 환경 속에서 학자와 생활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겪은, 아카데미 정서와 사회의 공기 사이를 부유하며 터득한 삶의 편린을 한 꺼풀씩 벗겨 내보인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가 여타 에세이와 다른 점은 우주라는 신비한 매개를 타고 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심채경은 사회구성원 공통의 경험을 잘 갈무리해 자기 이야기로 만드는 재주가 남다르다. 즉 여성천문학자의 이야기로 유혹하고, 살면서 누구나 겪는 보편적 일상으로 동조를 유도한다. 말하자면 타고난 이과형 인간이지만 온기를 놓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엿보이고, 학점 관련 메일에 대한 답신은 어떤 문장가보다 간결하고 적확한 단어로 핵심을 전달한다. 또 언제부턴가 잊혀진 우주인 이소연을 응원하는 대목에선 "신비롭고 놀라운 우주 이야기부터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과학정책 이야기까지, 오직 이소연만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 그 교훈을 얻으려고 우리는 그를 우주정거장으로 보냈던 것"이라면서 그가 우주에 다녀온 뒤에 겪은 모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한다고 역설한다.
할리우드의 전설적 감독 하워드 혹스는 '좋은 영화란 끝내주는 쇼트 2~3개와 엉망인 쇼트가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에세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어도 천문학자의 저작이니 전문적 이야기가 있을 거라 기대했으나 실망하던 차에 만난 마지막장. 저자의 인문학적 소양이 고스란히 스며든 4부는 군계일학이다. 서울대공원의 로랜드 고릴라 고리 롱의 죽음을 통찰한 '안녕, 고리롱'은 몇 번을 거듭해 읽을 만큼 압권이었다. 태양계 행성에서 탈락한 명왕성을 위한 글에서 "여러 위성 친구들과 서로 중력을 주고받으며 아주 오랫동안 멈추지 않을 자신들만의 왈츠를 추고 있을 뿐이다."(245쪽) 라고 말하는 대목. 내가 천문학자에게서 기대한 건 달 탐사나 우주산업강국 같은 빤한 이야기가 아닌 바로! 이거였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하늘을 보며 살아가는 천문학자인 워킹맘이 한국사회라는 필터로 바라본 지상의 이야기다. 정규시즌 2할 1푼 타자가 한국시리즈에서 터뜨린 9회 말 역전 만루 홈런을 맛보는 건 보너스. 그러니 끝까지 읽어야 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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