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의 계절이 돌아왔다. 쑥을 '애엽(艾葉)'이라고도 하는데 어린 쑥을 데쳐 다진 쇠고기와 함께 섞어 완자 모양으로 빚어 끓인 국을 쑥탕, 애탕이라고도 한다. 싱싱한 봄 도다리살을 듬뿍 넣고 끓인 도다리쑥국이 봄맞이 음식으로 인기가 높다. 바지락 넣은 쑥국도 있고, 돼지 등심 넣은 감자 쑥국도 있고, 콩가루나 들깻가루 듬뿍 넣어 고소한 맛이 나게 끓여내기도 한다.
아무래도 쑥국은 된장 쑥국이 정석이고 맛도 최고다. 끓는 물에 쑥을 데친 후 멸치 육수에 된장을 풀어 끓인다. 이때 '쑥 향을 해치니 된장 외엔 아무것도 넣으면 안 된다'고 한다. 내가 즐겨 먹는 쑥국은 할머니 표 그대로 오리지널 된장 쑥국이다. 어릴 때는 쑥 냄새도 싫고 맛이 별로여서 잘 안 먹었는데 어른이 되니 쑥국이 너무 맛있고 좋아서 해마다 3월이면 산이나 들로 쑥 캐러 다닌다.
쑥은 독특한 향기를 지녔다. 쑥은 단군신화에도 언급될 만큼 유래가 깊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잿더미 속에서 가장 먼저 피어오른 식물이 쑥이라는 사실은 끈질기고 강인한 쑥의 생명력을 짐작하게 한다. 쑥은 약이다. 풍부한 섬유소 덕분에 장운동을 도와주고 쾌변과 변비에 좋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 간 기능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우리 가까이 이런 명약이 있는 줄 몰랐다. 사실 우리 몸에 좋은 영양소를 제공하는 착한 먹거리들은 주변에 널려 있다. 밥상에 자주 오르고 즐겨 먹는 봄나물이 죄다 명약이다.
두릅은 사포닌 성분이 혈액순환을 도와 피로를 풀어주고 칼슘 성분이 신경을 안정시켜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 씀바귀는 소화 기능을 도와주며, 항산화 작용 및 면역력을 높이는 작용을 하고, 돌나물은 칼슘이 많아 골다공증 예방에 좋고, 달래의 칼륨 성분은 체내의 염분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하여 짜게 먹는 식습관을 가진 한국인에게 좋다고 한다.
요즘 TV를 틀면 방송국이 다르고 타이틀과 주제가 달라도 결국 화면을 채우는 것은 먹방이 대세다. 가만 보면 착한 음식들은 별로 없고 맵고 짜고 지방질 가득한 음식이 주로 등장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구하기 쉽고 값싸고 질 좋은 약재들로 넘쳐나는 우리 밥상을 뒤로 물리고 지방과 인공 첨가물이 들어간 패스트푸드를 즐겨 먹는 세태로 변해버린 식생활이 안타깝다.
스무 살 무렵에 여동생과 함께 어머니 손에 이끌려 청도 운문사로 쑥 캐러 간 적이 있다. 남부 정류장에서 투덜대는 낡은 완행버스를 타고 가는 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먼지를 날리며 비포장 길을 투덜투덜 가던 버스는 아니나 다를까 도중에 멈춰서 버렸다. 고장 난 버스를 수리하는 동안에 그늘 한 뼘 없는 땡볕에서 땀 뻘뻘 흘리며 기다리느라 고생 꽤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운문사 근처의 산골짜기에서 쑥 캐던 재미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봄비 내리고 난 다음 봄 해쑥이 쑥, 쑥, 올라오고 있다. 옛날 생각나 산으로 들녘으로 엄니 모시고 쑥 뜯으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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