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에서 비례대표 후보와 순번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이 기가 찰 지경이다. 여야와 위성정당, 제3지대 정당들은 최근 비례대표 후보와 순번을 일제히 발표했다. 하지만 너 나할 것 없이 모든 정당이 후보 자질과 순번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면서 일부는 사퇴하는 등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자질 논란에 휩싸인 비례대표 후보
조국혁신당은 도를 한참 넘었다. 법치주의를 농락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조국 대표는 자녀 입시비리 등의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 실형이 선고됐지만 비례대표 2번을 받았다.
1번 박은정 검사는 '윤석열 찍어 내기' 감찰 혐의를 받고 있다. 4번 신장식 대변인은 네 차례의 음주·무면허 전력이 있다. 8번 황운하 의원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10번에 배치된 차규근 전 출입국관리본부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관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조국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이들 모두 당선권이다. 조국 대표와 황운하 원내대표 등은 국회의원에 당선되더라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는다.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일부 논란의 인사들은 교체했지만 친북 성향 인사들이 당선권에 배치됐다. 진보당이 추천한 5번 정혜경 후보는 주한미군사격장 폐쇄운동을 펼쳤다. 15번 손솔 후보는 민중당 공동대표를 지냈다. 이들은 과거 반미·친북 성향 단체에서 일하며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했다. 민주당이 추천한 후보 중에도 국가보안법 폐지나 미군기지 반환을 외친 이들이 있다.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도 논란이 있다. 17번에 내정됐던 이시우 전 국무총리실 서기관은 골프접대 의혹으로 4급 서기관에서 5급 사무관으로 강등됐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공천이 취소됐다. 취약 지역인 호남 출신 후보 일부는 당선이 힘든 후순위로 몰리자 사퇴했고, 다른 호남 출신을 급하게 명단에 올렸다.
개혁신당도 비례대표로 내홍을 겪고 있다. 반도체 전문가인 양향자 의원은 과학기술인재가 당선권에 없다며 반발하며 탈당 기자회견까지 예고했지만 한 발 물러선 상태다. 이준석 대표 측근도 반발하고 있다.
의원 꿔주기 행태도 나타난다. 더불어민주당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보낼 비례대표 의원 6명을 제명하기로 했다. 추가 제명 가능성도 열어뒀다. 국민의힘도 국민의미래에 파견할 소속 의원 8명을 제명하기로 했다. '위성정당 의원 꿔주기'는 의석수 순으로 결정되는 총선 기호 때문이다. 현역 의원이 많아야 앞번호를 차지할 수 있어서다. 4년 전 총선에서 벌어졌던 '꼼수'가 이번에도 되풀이된다.
◆차라리 비례대표제 없애는 게 나아
비례대표는 지역구에서 국회에 진출하기 어려운 여러 직능 대표나 사회적 약자 등 다양한 분야를 대변할 의원들을 선출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하지만 위성정당이 허용되고 진영 논리가 강화되면서 오히려 논란이 되거나 극단적 정치 성향을 지닌 인물의 국회 진입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국가관을 뒤흔들 목적으로 공천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이 때문에 22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들에 대한 논란이 역대급이다.
국민들도 비례대표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지난해 4월 한국행정연구원이 공개한 '한국 정치 양극화와 제도적 대안에 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례대표 의석 확대 방안'에 대해선 부정적 의견이 82.2%에 달했다.
구체적으로 응답자의 31.1%는 '현행 비례대표 의석(300석 중 47석·의석 비율 15.7%) 유지'를 선호했다. '비례대표제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27.1%나 나왔다. 현재보다 축소해야 한다는 응답은 24.0%를 차지했다. 폐지 또는 축소가 유지보다 높게 나왔다.
비례대표 의석 확대에 부정적인 이유는 각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공천에 대한 불신이 작용했다. 해당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6명 이상(62.8%)은 '비례대표 후보 공천이 민주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비례대표제 취지인 지역에 국한하지 않은 직능과 세대를 대표하는 후보를 내세우기보다 공천권자의 입김에 따라 순번이 정해지는 '밀실 공천', '줄 세우기 공천'의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고 국민들은 판단한다.
김진표 국회의장도 지난해 "비례대표제가 자기 진영 이익을 위해 앞장서 줄 전사를 뽑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비례대표제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총선 후 여야가 현행 비례대표 제도를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기회에 비례대표를 폐지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다수 나오고 있다.
학계를 중심으로 비례대표제를 폐지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 위원인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과 임동욱 차의과학대 부총장은 지난해 4월 국회 전원위원회 개최에 즈음에 비례대표제 폐지를 포함한 선거제 개편을 제안했다.
이들은 현재의 비례대표제도는 상징성만 강조되면서 여야 정쟁의 최첨단을 장식하고 정치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대안으로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동결하고 ▷현행 비례대표제를 폐지하되 ▷지역대표 48명에 인구대표 252명을 뽑는 방식을 제안했다.
지역대표가 현행 비례대표제를 대체하는 방식이다. 인구와 무관하게 광역자치단체별로 3석(제주와 세종은 각각 2석, 1석으로 예외)의 지역대표를 선출하고, 세종시를 제외한 16개 선거구는 최소 1석 이상의 여성을 선출한다.
이를 통해 비례대표제 폐지 반대론의 이유 중 하나인 '여성 국회의원 등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면서 3선 이상의 인지도가 높은 후보는 지역대표로 출마할 가능성이 커지는 탓에 지역대표가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하게 된다.
'인구대표'는 현행 지역구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단순 소선거구제로 252석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표의 등가성을 높이기 위해 1인 1표 원칙에 따라 선거구를 획정하고 정치 신인의 등용문 역할을 할 수 있다. 굳이 따지면 '하원' 역할을 하게 된다.
비례대표제가 정치 경험이 없는 전문가를 발탁하고, 배려가 필요한 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취지를 살릴 수 없다면 아예 없애는 게 낫다. 더욱이 친북세력의 제도권 진출과 실정법 위반자들의 도피처로 활용되는 현실은 두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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