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대만해협에서의 전쟁은 한국에도 치명적이다

이춘근 국제정치학자
이춘근 국제정치학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후 윤석열 대통령에 이르는 34년(1988. 2~2022. 5) 동안 7명의 대통령이 재임했다. 7명의 대통령 중 좌우를 불문하고, 어느 대통령도 국제정치의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측면을 이해하는 분은 없었던 것 같다.

모두 북한과 대화를 통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중국과도 잘 지내고 동시에 미국과도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일곱 분의 대통령들이 국제정치의 영역을 '사자와 양이 함께 노니는 낙원'으로까지는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그분들의 국제정치 인식이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맨 앞에 거명한 4명의 대통령은 현실주의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분들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일곱 분은 모두가 남북대화에 연연했고 국제정치의 어려운 문제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좌파 대통령으로 분류될 수 있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은 물론 우파로 볼 수 있는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국제정치관도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모두 대화와 평화협정의 위력을 믿었다.

그러다 보니 국력이 훨씬 막강한 대한민국은 늘 북한에 끌려다니기 마련이었다. 남북대화가 열리느냐 혹은 폐쇄되느냐의 여부는 오로지 북한이 마음먹기에 따라 결정될 일이었다. 남북대화가 개최될 때마다 대한민국 정치가들은 한반도에 평화가 오고 있다고 착각하곤 하였다.

최근 야당 대표 이재명 씨가 선거유세 중 말했듯이 남북대화에 연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평화파'라고 말하며 마치 훌륭한 전략이라도 찾아냈다는 듯 우쭐댔다. 평화조약과 불가침조약이 언제라도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더욱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고 북한과 중국에 평화를 구걸했다.

이들의 관점과는 전혀 달리 국제정치는 역설의 영역이다. '평화를 원하는 자 전쟁(평화와 정반대 개념)을 준비하라'는 베제티우스의 금언처럼 '평화조약' '불가침조약' 혹은 '대화'보다는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가 언제라도 안전하고 확실한 평화 유지의 방법이었다. 동서고금 수천 년 전쟁사에 의해 증명된 이론이다.

이재명 씨는 한술 더 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代)중국 정책을 비판하며 대만과 중국 모두에게 "셰셰"(謝謝)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국제정치학적 무지(無知)를 노정했다. 대한민국처럼 세계적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최악의 지정학을 가진 나라의 지도자는 모름지기 국제정치의 역학 구도에 능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승만 박사 수준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국제정치의 현실주의적 측면을 이해하는 사람이라야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국제관계를 무정부 상태로 가정한다. 국제사회는 대내적으로 최고, 대외적으로 독립적인 주권(sovereign)을 가진 국가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구성 단위들이 최고의 권력을 가지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문제 해결의 마지막 수단, 동시에 가장 효과적이고 흔한 수단이 전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미 중국은 대만을 무력으로 점령하겠다고 천명하고 전쟁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물론 공산 독재 체제의 지배를 결연히 반대하는 자유민주주의 대만은 그 나름대로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무려 4억 명의 중국인 인명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산샤(三峽)댐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대만의 전략가들은 아무리 중국의 침략 공격에 의한 전쟁일지라도 과연 산샤댐을 공격해서 파괴하는 것이 옳은 일일지에 관해 심각한 전략 논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역시 대만이 중국의 무력 침략으로 인해 중국의 일부가 될 경우, 자신의 패권적 지위가 붕괴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대만해협에 미국의 군함들을 배치했을 뿐 아니라 중국 본토와 사실상 붙어 있는 금문도와 마조도에 특수부대인 그린베레를 투입시켰고, 영구 주둔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만해협 전쟁이 자신에게도 치명적인 일임을 잘 아는 일본은 '중국이 공격할 경우 일본은 대만 편에 서서 참전할 것'이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미국은 이를 환영했다. 중국의 대만 공격 야욕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 말 한마디로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려는 염원을 미국으로부터 승인받았다. 이런 와중에 차기 대권을 꿈꾼다는 사람이 대만과 중국 모두에게 "셰셰" 하겠다니 그것은 웬 해괴한 언급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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