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공천 프레이밍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올해부터 프로야구에 도입된 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자동볼판정시스템), 일명 '로봇 심판'이 야구사의 일대 전환을 불러오고 있다. 포수의 위치, 포구 방식과 무관하다. 스트라이크 존(Zone)을 통과하면 스트라이크다. 자의든 타의든 심판이 경기 흐름에 개입할 여지가 사라진 것이다. 여태껏 들쭉날쭉하던 판정이 잦았던 터다.

자의적 판정 영역이 사라지자 항의가 급감했다. 스트라이크 세 개에 물러나야 하는 타자, 볼 네 개면 루(壘)를 헌납해야 하는 투수 모두 판정에 신뢰를 보인다. 인간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 정확성은 91% 수준이었다. 선발투수가 한 경기에 100개의 공을 던진다 치면 9개의 판정이 심판 재량으로 달라진 셈이다. 야구의 본고장 MLB 사무국이 ABS 도입에 깊은 관심을 드러낸 까닭이다.

포수 '프레이밍'(Framing)의 영향력도 없어졌다. 잽싸게 포구 위치를 바꿔 볼을 스트라이크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 떨어지는 공을 잡아 올리려 한쪽 무릎을 굽히고, 팔을 앞으로 쭉 뻗기 일쑤였다. 심판을 속이려는 노력은 기록과 불가분의 관계다. 포수 평가 지표에는 '프레이밍 RAA(Runs Above Average)'도 있다. 볼을 스트라이크로 만들었을 때 줄인 실점을 수치화한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한 감각 탓에 가능했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바꿔낸 선수는 아티스트급 평가를 받았다. 1990년대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전성기를 이끌던 투수 톰 글래빈은 공을 반 개씩 바깥쪽으로 빼며 존을 넓혔다. 삼성라이온즈에서 뛰었던 양준혁을 향한 찬사 중에는 "풀 카운트에서 그가 치지 않으면 볼"이라는 말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천은 프레이밍을 알고도 속아 주는 심판을 보는 듯했다. 비명 현역 의원들을 배제할 때 특히 그랬다. 압권은 서울 강북을 공천이었다. 현역 박용진 의원의 자객을 자임하며 등판한 후보, 중도 탈락한 그를 대신한 후보 모두에게 민주당은 스트라이크 콜을 외쳤다. 감정이 들어간 판정으로 보였으나 시스템 공천이라고 반박했다.

최근 불거진 갭 투기 의혹과 공천의 상관성도 뒤죽박죽이다. 판정은 심판 고유의 영역이라지만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일관성 없는 판정은 경기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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