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끝나나 싶던 겨울이 드디어 물러가고, 마침내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이 왔소. 코 끝의 따뜻한 바람이 어찌나 반갑던지. 마음이 두근대고 발 끝이 간질거리는 게 아니겠소.
도저히 사무실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던 주말앤 팀도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마냥 밖으로 튀어나갔다오. 그리고 한복을 곱게 차려, 아니 빌려 입고 골목을 쏘다녔소.
이상화·서상돈 고택, 계산성당, 3·1만세운동길…. 이미 유명한 대구의 근대골목투어 코스지만 한복을 입고 거닐어보니 익숙한 곳이 새롭게 보이고, 색다른 기분이 들더이다. 대구의 재발견이랄까?
이미 파아란 하늘과 연둣빛의 새싹, 붉고 노오란 꽃들은 준비돼있소. 일단 나와서 봄을 느껴보시오.
◆'퍼컬'에 찰떡인 한복 골라봐
사무실을 탈출한 주말앤 팀은 일단 변장을 하기로 했소. 근대골목투어 2코스 중 한 곳인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대구 중구 서성로 6-1)에서 한복을 빌릴 수가 있다는 풍문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고 싶더이다.
"네가 뭘 좋아할 지 몰라 다 준비해봤어"라는 듯, 족히 100벌은 넘어보이는 한복들이 다소곳이 우리를 맞았소. 그뿐 아니라 갓부터 익선관, 비녀, 손가방, 댕기, 머리핀, 신까지 다양한 액세서리가 다 갖춰져 있었소.
넋 나간 우리에게 배명숙 골목문화해설사가 한복 고르는 꿀팁을 알려줬소. 치마 색부터 고른 뒤 그에 어울리는 저고리를 고르면 된다는 것! 꽃샘추위라도 걱정 마시오. 털과 누빔으로 된 따뜻한 배자도 빌릴 수 있다오.
우리는 각자 퍼스널 컬러에 맞게 치마와 저고리를 골랐소. '봄웜톤'인 이 기자는 노란 파스텔색과 남색 치마가, '겨울쿨톤'인 최 기자는 하얀색의 저고리와 하늘색의 치마가 아주 찰떡이더이다.
그렇다면 임 기자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남자 한복을 척척 입었소. 여자 한복은 지지대가 있어 곡선의 아름다움을 살려주는 속치마를 입어야 하고 끈으로 여며야하는 것이 많아 시간이 꽤 걸리지만, 남자 한복은 그렇지 않았소. 갓까지 쓴 임 기자는 마치 타임머신에서 잘못 떨어진 찐 조선시대 사람 같았다오.
변장을 끝내고 계산예가의 문을 나서니 모든 사람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 "예쁘다"고 말하는 어르신도, 멀리서 우리의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흐뭇한 미소로 쳐다보더이다. 덩달아 우리의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졌다오.
◆봄바람 타고 과거로 떠나볼까
우리가 한복을 빌린 계산예가에는 대구의 근대 건축물과 인물들의 자료를 볼 수 있는 전시실도 있소. 한국 근대문화를 이끈 예술인들이 계산동 일대에서 활동했고, 아름다운 근대 건축물이 여전히 잘 보존돼있다는 것에 자긍심이 느껴졌소.
계산예가와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은 상당히 가까이 있다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민족혼을 일깨운 이상화 시인과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한 서상돈 선생의 고택인데, 전체적인 집 틀과 부엌 등 보존이 잘돼있고 그들의 활동과 업적을 정리해놓은 안내판도 있어 의외로 찬찬히 볼 것이 많았소. 특히 고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면 기와 너머로 파란 하늘이 함께 담겨 참 예쁘다오.
우리는 걸음을 옮겨 옛 제일교회로 향했소. 지난해에 무려 창립 130주년을 맞은 대구 제일교회의 옛 예배당이자, 현재 기독교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는 곳이오. 유구한 세월의 흔적이 담긴 제일교회 계단에 앉아 릴스(짧은 영상)을 찍고 있으니 많은 이들의 시선이 쏠리더이다. 하하. 어쨌든 예사로 지나쳐가던 곳을 좀 더 가까이에서 마주하니 오른쪽에서부터 쓰인 한자 '第一禮拜堂(제일예배당)'의 글씨도, 아치형의 벽돌과 나무 출입구도 새삼 아름답게 보였소. 혹시 갈 일이 있다면 뭐든 새삼스럽게 느껴보길 바라오.
다음 코스는 계산성당.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이곳에 한복을 입고 당도하니 뭐랄까, 우리가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된 듯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차올랐소. 사람들을 붙잡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시오!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가톨릭의 중심지로, 건축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100년이 훌쩍 넘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란 말이오!"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외국어 실력이 조금 모자라 간신히 참았다오.
계산성당 앞 길을 건너면 높다란 계단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3·1만세운동길이오. 3·1운동 당시 대구 학생들이 만세를 외치며 집결지로 이동했던 길이란 말이오. 아직도 안가보셨소? 꼭 가보길 추천하오. 계단 옆에 전시된 3·1운동 당시 사진들을 보며 올라가다가 절반쯤 갔을 때 뒤돌아보면 계산성당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오. 헌데 최근에 그 사잇길에 건물 하나가 들어서서 성당을 좀 가리긴 하더이다.
어쨌든 계단을 다 올랐으면 마침내 청라언덕이 나타나오. 맞소, 요즘 SNS에서 핫한 그 '목련 포토존'이 있는 곳 말이오. 활짝 핀 하얀 목련 뒤로 제일교회의 첨탑이 보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오. 사진 찍기 예쁘다고 소문 난만큼 우리가 갔을 때 이미 스무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었소.
사무실을 탈출한 우리는 그럴 시간이 없었기에, 스윗즈 주택 옆 만개한 목련나무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남겼소. 청라언덕에는 목련 말고도 벚꽃, 개나리, 등나무꽃 등 다양한 꽃들이 피어 아름다움을 더한다오. 꼭 한번 가서 인생샷을 남겨보길 바라오.
◆취향대로 즐기는 근대골목투어
우리는 이렇게 눈으로 아름다움을 담으며 근대골목투어를 즐겼지만 좀 더 다이내믹하고 특별한 투어를 원한다면 물론 그것도 준비돼있소.
우선 '스탬프투어'가 있소. 계산예가 관광안내소 등에 비치된 골목투어 안내 팸플릿을 펼쳐보면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란이 마련돼있소. 청라언덕부터 화교협회(소학교)까지 12곳의 장소 중 6곳 이상을 찍으면 종로 일대의 일부 음식점과 카페, 한약방, 떡집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오. 장소마다 스탬프를 찾아 직접 찍어보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오.
매주 금~일요일 오후 6시부터는 '밤마실투어'가 열린다는 사실을 아시오? 청사초롱을 들고 근대골목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야경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색다른 투어라오.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쓰담투어'도 있소. 근대골목을 걸으면서 해설도 듣고 쓰레기도 담으며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친환경 투어라오. 쓰레기봉투와 일회용 장갑, 집게와 어깨띠를 제공하고 자원봉사시간도 제공해 인기가 많다고 하오.
이렇게 골라서 즐기는 재미가 넘치는 근대골목투어를 이번 봄에 새삼스럽게 해보는 것이 어떻소. 근대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대구의 매력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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