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모든 길은 '그들'로 통한다?

한윤조 문화부 차장
한윤조 문화부 차장

9년 만에 문화부 기자로 복귀했다. 과거 5년 연속으로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경제부, 사회부 등을 거쳐 다시 문화부로 돌아오기까지 10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이 걸린 셈이다. 강산이 한 번 변할 만큼에 육박하는 긴긴 시간이다.

그 오랜 시간을 떠나 있었던 만큼 체감할 만한 변화도 상당해야 할 것이 당연한 이치지만 사실상 시간의 갭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의아할 정도다. 과연 이게 대구 시민에게나 문화계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일까?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랜 시간의 공백을 느끼지 못하는 데에는 '회전문 인사'라고 늘 지적되는 대구 문화판의 악습이 깨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큰 몫을 했다. 어딜 가도 예전에 알던 인물들이 그대로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조직이라면 10년 전에 비해 젊은 기획자들, 중견 예술인들이 제법 성장해 자리매김을 했어야 하지만 아직도 다음 세대로의 세대교체 움직임은 보이질 않는다. 외려 연령층만 고령화했을 뿐이다.

더 황당한 것은 아무리 홍준표 대구시장이 '문화계 카르텔 척결'을 외쳐 봤자 그들끼리의 짬짜미는 더욱 공고해졌다는 사실이다.

대구시는 당초 대구시 산하로 운영되던 각종 기관들을 합쳐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을 신설하고, 8개나 되는 관장에 대한 공모를 한꺼번에 실시하면서 타지 출신 인사를 수혈하는 등 인사에 대혁신을 가져왔다고 자평하지만 이것은 그저 겉보기에 불과할 뿐이다.

과거 '낮의 대통령과 밤의 대통령이 따로 있다'고 할 만큼 보이지 않는 배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메이저 언론사들을 일컬어 소위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렀던 암흑 시절이 있었다.

수십 년 전에나 성행했던 그 말이 딱 들어맞는 게 지금 대구 문화계의 상황이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암흑의 권력자'들이 모든 것을 제 맘대로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자리를 얻는 일도, 상을 받는 일도 '그들'을 통하지 않고선 어려운 실정이다.

벌써 임기 만료로 올해 자리가 비게 될 대구문화예술진흥원장을 비롯해 각종 기관장 자리에 자리를 부탁하기 위해 줄줄이 줄을 서고 있다는 소문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특정 인맥 줄서기가 아예 노골화했다.

배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고한 카르텔은 건강한 대구 문화계 발전을 위협하는 암적인 요소다. 예술인의 가치가 그가 가진 실력이 아니라, 누구에게 연줄을 대고 무릎을 꿇느냐에 따라 좌지우지되니 말이다. 여기에 따라붙는 각종 추문들은 차마 언급하기조차 싫을 정도다. 어떤 나쁜 짓을 행하더라도 그 인맥의 카르텔을 통해 묻혀질 뿐이고 피해자들은 피해조차 호소하지 못한 채 대구 문화계를 떠나거나 입을 다물 뿐이다.

문화계에서 들려오는 각종 소문들을 추적하다 보면 결국 인맥들은 하나로 연결되곤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아니라 "모든 길은 '그들'로 통한다"라고 해야 할 정도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우리나라는 상당한 민주적 진전을 이뤘지만, 대구 문화계의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다. 민주적 절차와 과정, 공정성은 무시되고 이면 세계에서 힘을 행사하는 '그들끼리의 리그'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대구 문화계가 건강해지는 방법은 '다양화'만이 해법이 될 것이다. 그들끼리의 리그를 깨고 실력 있는 누구나 도전하고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펼쳐 보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만이 대구 문화계를 진정한 예술의 향기가 흘러넘치는 풍요로운 도시로 만드는 핵심이 될 것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