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발행하는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의 지역 순회 '시문학 북토크' 행사가 내일(30일) 오후 3시 대구 정호승문학관에서 열린다. 이른바 '시문학 북토크' 프로그램은 1980년대 이후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 대구 중심가에 '시인다방'이 있었다. 필자는 이곳에서 요즘 말로 '북토크'로 불리는 '시인과 독자의 만남' 행사를 100회 이상 기획 운영했다.
지금도 시인다방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은하, 아세아, 왕비, 유경, 심지 등으로 이어지던 문학청년들의 단골다방이 1980년대 문턱을 넘어서면서 문을 닫거나 시끄러운 음악다방 형태로 변해버려 당시 대구에는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서로를 고무할만한 장소가 없었다. 시인다방은 이런 문화적 향수를 달래고 지역 문화공간의 창조적 계승이라는 점에서 궁핍하고 암울했던 당시의 문학청년들과 문인들 사이에 정신적 출구 역할을 했다. 나중에 지역 언론사가 쓴 '대구다방 역사 50년사'에서 "시인다방이 80년대 대구 문학의 르네상스를 일군 문화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인다방은 정기적인 북토크뿐 아니라 시낭송회, 연극공연, 미술, 음악 이벤트를 수시로 기획하여 꽤 매력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소설가 장정일, 이인화가 문청시절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나와서 문학 토론도 하고 급하면 서빙을 맡기도 했다. 문인수·이하석·이태수·이성복·장옥관·엄원태·송재학·김용락·배창환·서지월·김세웅·김선굉·서정윤·하청호·김재진·손진은 등···. 대구 문단의 주옥같은 이름들이 모두 그 당시 '시인과 독자의 만남' 행사를 통해 독자를 만나고 소통하였다. 특히 팸플릿 형태의 소책자 '괴로운 시인'을 발행해 대구 문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자는 장정일·이인화·구광본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해 매달 1회 발행됐다. 독특한 편집형태는 나중에 구미의 '수요문학교실'과 평론가 김양헌이 주도한 '목요시학회' 등에 꾸준히 활용돼 90년대 대구·경북 문학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
옛날식 다방은 단순히 차 한 잔 마시는 곳이 아니라 문인과 예술인이 모이는 문화·지식의 혁신 공간이었다. 지금도 북카페나 시집도서관, 갤러리 형태의 차와 문화를 함께 나누는 장소가 곳곳에 많다. 이와 같은 장소는 문화와 지성의 산실로 새로운 사상의 창출과 창조적인 문화 예술활동의 전파에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아쉬운 것은 요즘 세태가 자극적인 유흥에 길들어져 고전적인 문화공간에 관한 관심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경영난을 호소하는 곳이 적지 않은데 정부 차원이나 민간에서 더 세심한 관심을 두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민족이 쇠퇴하는 것은 문화가 쇠퇴하기 때문이다. 문화가 쇠퇴하면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되고 경제도 무너진다는 역사의 교훈을 새겨보아야 할 때다. 특히 시의 화음은 불의와 병마를 이겨내는 에너지를 생성하며 세상을 행복하고 화목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지금이 어느 때 보다 더 '시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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