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는 현대음악의 예언자적인 존재라고 평가받는다. 흔히 현대음악이라고 하면 복잡하고 난해한 혹은 고전적 질서를 모두 파괴하는 전위 음악일 거라고 예측한다. 애호가들조차도 극단적인 전위 음악이라는 생각 아래 현대음악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 청각적인 자극은 시각적인 자극보다 강력할 뿐만 아니라 자극을 받아들여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대중의 눈을 유혹하는 자극으로 가득 차 있지만 유독 청각적인 영역만은 조화롭고 자연적이며 본래적인 것들을 추구하려 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도 시각적인 것에는 대체로 허용 범위가 넓지만 청각적인 것에는 허용 범위가 일정하게 규제된다. 청각의 영역은 자극을 받아들여 그것을 소화하고 처리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청각적인 것은 대부분 언어적 의미나 상징성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그러한 이유로 시각적인 자극보다 정신과 신체에 손상과 상흔을 더 깊게 만들어 낸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 관객의 안녕을 해치는 청각적인 실험이 그리 용이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대음악이 앞선 시대가 이루어 낸 풍요로운 성과를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은 시도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앞의 시대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한계를 뚜렷이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무튼 전위적인 음악은 관객들의 외면 속에서 지속적인 연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음미하기에 불편한 음악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티의 음악은 이러한 모든 예측에서 벗어난다. 그의 음악은 예언자의 언어처럼 복잡하지 않고 간결하며 상징적이다. 그래서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라 불린다. 미니멀리즘이 21세기의 새로운 감수성이라는 점에서 사티의 음악은 대중적이까지 하다. 피아노 모음곡 짐노페디(Gymnopédies)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단순미 때문에 CF에 자주 등장한다. 전통적인 조성 체계와 사상을 현대적으로 수용한 신고전주의 작곡가 오네게르, 미요, 풀랑크 등으로 이루어진 '프랑스 6인조'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신을 원해요'(Je te veux, 1902)는 피아노와 소프라노를 위한 곡이며 피아노 독주곡이기도 하다. 피아노 독주는 간결하고 세련된 왈츠를 들려주고, 밝고 따뜻한 소프라노의 음성은 세레나데처럼 닫혀 있던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준다. 사티의 작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이며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다. 이 곡은 동화 속의 사랑 이야기처럼 단순하고 진솔하며 반복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3박자의 왈츠에 실린 노래는 조를 바꾸어 가며 관능적인 색채를 가미한다. 실제로 사티는 파리 음악원을 중퇴하고 오래도록 안데르센 동화에도 심취했다.
'당신을 원해요'는 형식을 최소화한 작품이다. 암시적이거나 한 점의 모호한 감정도 개입할 여지가 없는 밝고 확신에 찬 분명한 사랑을 노래한다. 복잡하거나 복합적이지 않고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음악이 사티가 지향하는 음악이었다. 위대한 사상이 단순하듯이 사티 또한 위대한 단순성을 추구하였고 그것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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