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초대석] AI 전쟁 시대, '보이는 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바닷물의 온도가 5℃만 바뀌어도 어종이 홀랑 바뀐다. 바뀐 어종에 맞는 그물이 없으면 고기 잡기는 어렵다. 세계의 리더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자유무역의 옹호자가 아니다. 보조금을 금지하는 WTO를 무력화시켰고, 중국과는 관세 전쟁을 벌였으며 이젠 첨단산업에서 보조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젠 세계 경제에서 자유무역은 물 건너갔다.

룰은 강자가 만드는 것이지 약자의 입장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그간의 입장을 뒤집고 경제 안보를 명목으로 하는 보호주의를 펴는 것은 중국과의 무역 전쟁, 기술 전쟁 때문이다. 무역 전쟁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미국은 AI 기술 전쟁에서 반드시 중국을 좌초시켜야 한다. 문제는 미국은 AI 기술은 최고지만 AI의 하드웨어 인프라인 첨단반도체와 배터리를 생산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배터리 기업에 보조금을 주고, 세금을 감면해 주면서 메이드 인 USA를 만들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수는 뒤따라오는 놈 다리 걸어 넘어뜨려 못 오게 하지만, 고수는 하수와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한발 앞서간다. 미국이 후발국 중국에 반도체 장비를 팔지 말고 첨단반도체와 컴퓨터를 공급하지 말라고 우방국을 압박하는 것보다는 반도체가 아니라 초전도체, 컴퓨터가 아니라 양자컴퓨터로 한발 앞서가는 것이 정답이지만 지금 미국은 그럴 상황이 못 된다.

지금 세계 첨단산업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사라졌고 정부의 '보이는 손'이 좌우한다. 민간의 창의로 기술경쟁력을 높이는 시대가 아니라 정부 보조금으로 첨단산업의 기술경쟁력과 기술격차를 벌리는 시대다. 다른 나라가 보조금을 주면 불륜이지만 미국이 하면 경제 안보다. 미국이 IRA와 칩스(Chips) 법을 만들어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을 지원하면서 전 세계 첨단산업에 '쩐(錢)의 전쟁시대'를 열었다.

정부 보조금으로 LCD, 태양광, 배터리에서 세계 1위를 장악한 중국은 이제 반도체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천문학적 보조금으로 반도체 국산화에 올인하고 있다. 미중에 뒤질세라 유럽 일본 인도와 대만까지 적게는 10조원, 많게는 63조원의 첨단반도체 보조금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미중의 기술 전쟁은 이제 AI 전쟁에서 결판난다. 미국은 반도체 기술은 있지만 첨단반도체 생산 공장이 없고 중국은 공장은 있지만 기술이 없다. 결국 시력(視力)이 실력(實力)이다.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이 기업이든 국가든 간에 운명을 결정짓는다. 40년 전 반도체의 가능성을 알아본 할아버지의 혜안이 아들을 웃게 하고 손자를 행복하게 하고 대한민국을 미중의 기술 전쟁 속에서 당당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세계의 패권국 미국이 다시 첨단반도체 생산에 뛰어들었고, 세계 2위의 경제력에 세계 1위의 인구 대국, 엔지니어 대국 중국도 '10년에 칼 한 자루만 간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뛰어들었다. 돈과 인력을 퍼부으면 시간이 문제일 뿐 미국과 중국이 5㎚(나노미터)대 이하 첨단반도체를 못 만들 것이라는 것은 오산이다

지금 제조업에서 반도체 하나 빼고는 중국보다 잘하는 것이 없는 한국, 첨단반도체 생산 기술이 미중의 전쟁에서 한국을 지켜주는 최종 병기이자 방패다. 이제 한국의 대미 관계, 대중 관계의 수명은 반도체와 같이 간다. 한국은 첨단반도체 생산 기술에서 미·중에 따라잡히는 순간 바로 개털 된다.

18개월에 집적도가 두 배로 높아지는 '무어의 법칙'에 따라 발전해 온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 공정 기술이 1㎚ 이하로 가면 실리콘기판 자체의 물리적 한계가 온다. 새로운 물질, 혹은 아이디어가 돌파구다. 뛰어난 천재의 아이디어 하나가 나라를 먹여 살리는 시대다. 한국 사회는 지금 의대 증원에 모든 것이 쏠려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반도체 엔지니어의 양성이다.

남들과 같이 해서 남들보다 잘하기는 어렵다. 주요국 정부가 반도체를 국가안보산업으로 첨단반도체 생산 지원에 대놓고 올인하는 상황이지만 한국은 민간기업의 수익 산업으로만 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 지금 반도체 기술 전쟁 시대 정부 보조금은 민간기업 지원금이 아닌 국방비로 봐야 한다. 국부 창출과 경제 안보의 중심에 있는 반도체 산업의 인재 양성과 정부 지원은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다.

특집부 weekl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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