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정치 악순환

서울취재본부 박영채 기자

서울취재본부 박영채 기자
서울취재본부 박영채 기자

여의도 국회는 갈등의 정점인 탓에 언제나 시끄럽다. 검은색 카니발이 분주히 오가고, 정장 차림 대관(對官) 업무자, 보좌진과 국회 직원, 방문객에 견학생들이 뒤엉킨다. 확성기는 국회 정문 앞에서 점심시간마다 날 선 발언을 쏟아낸다. 난장(亂場)이 따로 없다.

그랬던 요즘 여의도가 조용하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와서다. 금배지를 하나 더 추가하겠다며 의원은 지역구로 달려갔다. 공천장을 받지 못한 자는 후일을 도모하며 깊은 잠수에 들어갔다. 국회 회의가 없으니 현역 의원들이 여의도를 찾을 일도 없다. 여의도가 아니라 전국이 정치 현장이 됐다.

하지만 '정치 현장'이 유독 조용한 곳이 있다. 대구경북(TK) 얘기다. TK 지역 곳곳을 둘러보면 선거일이 임박한 게 맞는지 의심이 든다. 주요 교차로, 사람이 몰리는 곳에서 유세 장면을 보기 쉽지 않다. 소음 민원을 수시로 유발하던 유세차를 만나면 반가울 지경이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 전 경선 과정에서 TK 선거는 사실상 끝났다. 보수 텃밭이라 국민의힘 공천장이 당선장으로 여겨진다. 야권마저 존재감이 없어 치열한 본선 경쟁이 없다. 그나마 격전지라 불리는 경산과 대구 중구남구 선거구도 국민의힘 후보가 보수 성향 무소속 후보와 싸운다. 공약 경쟁도, 한 명의 유권자 마음이라도 더 얻으려는 구애도 사라졌다.

당선이 따 놓은 당상인 일부 TK 후보들은 자신의 선거구도 제쳐둔 채 타 지역 선거 돕기에 열을 올린다. 선거운동원은 마지못해 현장을 다니고 후보는 지역조차 지키지 않는다. 유권자 선택이 아니라 당 공천에 따라 당선 유무가 갈리니 중앙당 전략에 따라 떠돌이 지원을 마다할 수도 없다. 국민이 자신의 뜻을 대변할 대표를 뽑는 민주주의의 꽃, 총선 선거운동 기간이 이처럼 지나가고 있다.

위성정당이 난립, 회의론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비례대표 쟁탈전은 민주주의가 이렇게 흐르는 게 맞느냐는 근원적 의문을 낳는다. 사적 보복으로 정치를 활용한 게 아니냐는 비판,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자들이 원내 입성을 노린다는 문제 제기, 각종 논란·잡음의 꼬리표를 단 후보들이 금배지를 달게 생겼다는 비아냥 등이 들린다. 하지만 후보 등록은 끝났고 선거일이 지나면 그들은 무소불위 의원 자격을 얻는다. 한번 금배지를 달면 그걸 떼어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지난 4년의 세월이 증명했다.

5천만 인구를 대변하는 국회의원 300명의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다. 법을 제·개정하고, 600조원이 넘는 정부 예산을 관리·감독하며, 국정 운영을 감사·조사해 올바른 정책이 이뤄지도록 한다. 개개인의 의정 활동과 판단, 결정은 국민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주권을 그들에게 이양했을 때 국민은 상식과 합리로 제대로 일해 주길 바라며 우리 삶이 더 나아지도록 최선을 다해 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4·10 총선이 삶에 도움이 될 결정을 하는 한 표 행사인지 의문은 쉬이 해결되지 않는다. 지역 일꾼을 뽑자는 선거는 보수와 진보로 진영을 나눈 뒤 상대가 아니면 된다는 극단 정치 감정 해소의 장이 되고 있다. 갈등을 풀어 내지 못하고 증폭하는 정치가 표를 더 얻는다. 총선 이후 여의도는 이전보다 더 첨예한 대립과 갈등, 반목으로 가득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우린 표를 얻었지 않느냐'고 항변하면 그만이다. 민주정이 타락하면 중우정이 된다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우려는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던가. 대한민국 정치는 악순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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