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 투표를 해 본 게 30번이 넘는다. 재보선을 합치면 국회의원 선거에는 10차례 이상 모두 참여했다. 다른 유권자와 마찬가지로 때론 환호했고, 더러는 탄식했다. 군부독재 시절부터 3김이 여소야대(與小野大)를 만든 13대, 3당 합당으로 거여(巨與) 민자당을 출범시킨 뒤 치러진 14대, '탄돌이'를 양산한 17대,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위성정당 포함)이 180석을 싹쓸이한 21대에 이르기까지 총선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작용했다.
경악할 만한 구도로 짜여진 게 수두룩했고, 20대 총선에선 여당 대표가 일부 후보의 공천장 날인을 거부하고 자신의 지역구로 내려간 '옥새 파동'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그래도 22대만큼은 아니었다. 총선 중심에 있는 여야 모두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팬덤 포퓰리스트 정당이 나타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도 걱정스럽다. 불량 후보가 즐비한 데다 극단 유튜버들이 선거판을 흐리는데 몇몇 후보는 그에 편승해 민주주의를 타락시키고 있다.
투표가 코앞인 현실에서 국민의힘은 보기 민망하다. 여당으로선 민생과 경제 실패에 책임을 지고, 몸을 낮춰야 하는데 '범죄자' '쓰레기' 같은 말을 쏟아 내는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행보가 얼마나 먹힐지 의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며 사과와 탈당을 요구하는 일각의 내부 총질은 산토끼마저 등을 돌리게 하는 자해행위다. 대통령실이라고 다를 게 뭔가. 시민사회수석은 '기자 회칼 테러' 발언으로 경질됐고, 출국금지된 인물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특히 난마처럼 얽힌 '의대 정원' 해법을 어떻게 찾아갈지 지켜볼 일이다.
민주당은 목불인견이다. 자신의 선거와 지원 유세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이재명 대표는 얼마 전 법정에 출두했다. 위증교사 혐의 관련 3차 공판을 위해서다. 같은 날 부인 김혜경 씨가 다른 법정에 섰으니 이런 진기록이 없다. 이 대표는 총선 8일을 앞둔 2일에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해야 했다. 또 양문석 후보는 아파트 매입 과정에서 당시 대학생 딸이 사업자 대출로 11억원을 받아 '편법 대출' 논란으로 사과했지만 사안은 현재진행형이다. 유튜브 방송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종군위안부 간 성관계를 암시한 후보도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가 숨이 차다.
이러는 사이 조국혁신당이 세몰이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 혐의로 2심에서 징역 2년의 철퇴를 맞은 조국 대표는 비법률적 방식의 명예 회복을 예고하더니 무대 전면에 올랐다. 비례대표 1번에 전진 배치한 박은정 후보는 배우자의 '전관예우 고액 수임'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고, 울산시장 선거 개입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받은 황운하 의원은 8번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도 지지율이 영향을 받지 않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팬덤 포퓰리스트 정당의 가공할 위력이다.
돈만 되면 거리낌 없는 극단 유튜버들은 선거판을 휘젓고 있다. 전국 40곳이 넘는 총선 사전투표소 등에 몰래 들어가 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구속된 유튜버가 대표적이다. 가뜩이나 투표용지 길이가 51.7㎝로 역대 최장이 되면서 유권자의 피로도가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다. 정책 이슈 실종과 극단적 진영 대결로 정치 혐오가 큰 현실이다. "국민은 자기 수준의 정부(의회)를 갖는다"는데 4‧10 총선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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