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알퐁스 도데 단편집
알퐁스 도데 지금 / 살림 펴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고백하자면 알퐁스 도데를 다시 읽은 건 순전히 영화 '콘택트'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콘택트'를 보다가 칼 세이건의 동명소설을 읽게 되었고, 내친 김에 알퐁스 도데의 단편집까지 이른 것. 당초 계획은 '별'만 읽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수업'을 거치면서 완독하고 말았다. 교과서에 수록된 그 유명한 단편을 말이다. 책은 '풍차 방앗간에서 보낸 편지'와 '월요일 이야기' 2개의 단편집을 엮었다.

'풍차 방앗간에서 보낸 편지'는 고향 프로방스로 돌아와 풍차 방앗간을 계약하고 입주한 주인공의 활기찬 시절에 대한 회상이 중심이지만, 현실 풍자도 놓치지 않는다. 칼럼 기고를 거절한 시인 친구에게 건넨 '스갱 씨의 염소'가 대표적인데, 압권은 주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좇아 산으로 올라간 염소의 최후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도데는 "아침에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구먼요."라는 힐난 섞인 문장을 반복하면서 초기 산업사회에서 유리된 자유주의자를 질책한다. '빅슈의 손가방'과 '황금 뇌를 가진 사내의 전설'은 창작자의 고통을 현실적 은유로 그러나 신랄하게 묘사한다. 첫 번째 단편집의 압권은 단연 '별'이다. 뤼브롱산에서 양을 치는 목동과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스테파네트 아가씨 이야기. 언제나 사건은 예기치 않은 부재와 소동에서 비롯되었으니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별'을 읽는 누구라도 머리 위로 아름다운 별똥별 하나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게 되리라.

영화평론가 백정우
출처-클립아트코리아

2부에는 보불전쟁으로 상처받은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도데의 속내가 담겼다. '어느 알자스 소년의 이야기'라 부제 붙인 '마지막 수업'의 마지막 장면.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한 아멜 선생님이 칠판에 큰 글씨로 '프랑스 만세!'를 쓴 후 "이제 끝났다…. 돌아들 가거라."로 맺는 문장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던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도데는 말썽꾸러기 프란츠와 돌이키기 힘든 잘못을 저지른 꼬마 스파이 스텐은 아이들의 천진난만과 치기어린 장난조차 허용될 수 없는 패전국의 슬픈 현실을 강렬하고 처연하게 드러낸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에밀 졸라는 도데의 작품을 자연주의 소설이라 칭했다지만, 외려 정반대이다. 글 전반에서 드러나는 정감어린 문체는 차치하고라도, 다른 단편 '입주'에서 "이제, 그 시끄럽고 거무칙칙한 파리를 내가 그리워할 리가 있겠습니까?"라며 프로방스에 흠뻑 빠진 도데였다. 그러니 도회적 삶과 자연과학 법칙 안에서 서사를 노정하던 자연주의 소설의 원리로 목동과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보낸 하룻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우주의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라고 칼 세이건이 말했듯이, 알퐁스 도데는 프랑스를 사랑했고, 프로방스를 사랑했으며, 방앗간 풍차와 언덕 위로 부는 바람을 사랑했다.

오래전, 사춘기 소년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든 '별'의 마지막 문장. "저 많은 별들 중에서 가장 가냘프고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것이라고…." 나는 언제 알퐁스 도데와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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