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우영의 새론새평] 22대 총선 이후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뿌리 깊은 정치 불신에도 주기적으로 300명의 대표에게 주권 위임 절차를 수행하는 이유가 있다. 공동체의 오염된 숙업을 정제하고 건실한 세력을 충원하는 수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곧 막을 내릴 22대 총선은 선거 흑역사의 백미로 기록될 징후가 뚜렷하다.

선거 경쟁을 좌우하는 '프레임, 구도, 규칙, 정책' 중 무엇 하나도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오히려 여야 간 승패와 무관하게 정치의 위기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반세기 전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은 "한국 정치는 중앙 권력을 향한 소용돌이 정치"라고 일갈한 바 있다. 그 소용돌이의 기류는 토네이도가 되었고, 22대 총선 이후의 공동체 앞날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선거는 지난 과오를 청산하고 미래 청사진을 도출하는 회고와 전망의 변증법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 정국은 지난 대선의 연장전이자 복수혈전에 갇혀 버렸다. 한동훈 위원장, 이재명 대표, 조국 대표가 핵심 플레이어이고, 비공식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연관된다. 이들은 법률가 출신으로 착한 놈 대 나쁜 놈의 경직된 인식의 틀에서 쟁투한다.

대통령 탄핵, 한동훈 특검, 이조 범죄자 심판은 역대 선거 프레임을 극대화한 최강의 심판론이다. 반면 양극화된 혐오 정치로 민생 이슈는 바닥을 기고 있다. 결국 다음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 또한 이번 총선의 연장전으로 치러질 악순환이 훤히 내다보인다.

그런데 양당을 심판하겠다던 제3지대는 변죽만 울린 채 눈에 띄지 않는다. 자유민주연합이나 국민의당같이 대선후보급 인물과 지역 기반이 없다는 점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양당보다 더한 분열적 행태와 정체 모를 목표가 근본적인 이유다. 이대로면 이들은 유례없이 초라한 총선 성적표를 받아 쥘 것이다.

그리고 유권자는 향후 제3지대의 존재 자체를 용납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녹색정의당은 대중적 진보 정치의 명맥이 끊길 최대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기성 정당과의 명분 없는 야합과 이념 과편향 사이에서 널뛴 자업자득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뼈를 깎는 성찰을 한다 해도 이 풍랑을 넘어설 수 있을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민주화 이후 공직 선거에 등장한 가장 나쁜 게임의 규칙이다. 준연동형제는 국민의힘을 배제하고 민주당과 정의당의 야합으로 탄생했다. 그 탓에 이재명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위성정당 폐지를 공약했지만 다시 약속을 파기했다. 확인되듯이 준연동제는 위성정당을 합법화하는 도구로 악용되며 양당을 숙주로 기생하는 군소 정당들이 다당제의 싹을 스스로 잘랐다. 이 제도가 작동하는 동안 군소 정당은 몰락하고 양당의 적대적 상호 의존 체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또 하나의 나쁜 게임의 규칙은 비합리적 공천제도이다. 양당 모두 현역 의원 평가 결과를 공천에 도입했지만 양극단의 결과를 가져왔다. 민주당은 비명 현역 의원을 숙청한 반면 국민의힘은 주요 다선 의원을 교체하는 데 실패했다. 아울러 막말과 부도덕을 엄단하겠다고 외쳤지만 부적격자들이 선거판을 복마전으로 이끌고 있다. 이들이 당선된다면 22대 국회를 '동물국회'로 몰고 가리라는 예상은 과하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 의대 정원 문제는 초당적인 공론화와 공약 경쟁으로 정책을 수렴했어야 했다. 그것이 책임 정치의 과업이다. 그러나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이익단체의 담대한 겁박과 파업에 역대 정부가 실패한 의료 개혁이 또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생명의 존엄이 정략적인 표 계산에 미치지 못한다면 이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은 요원하다. 그리고 민생 없는 최악의 총선 사례로 역사에 회자될 것이다. 이처럼 심판 정치와 책임 정치가 공존하는 법은 매우 드물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무당층이 크게 줄고 있지만 18~29세 무당층 비율은 40%를 넘나든다. 혐오 정치가 정치 혐오를 낳고 정치 혐오가 정치 무관심으로 악화되는 현실을 방증하는 결과다. 미래세대를 외면한 기성세대의 저급한 득표 싸움은 청년의 관심과 투표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용돌이의 한국 정치는 공동체와 미래세대의 꿈을 박탈한 채 질주할 것이다. 헨더슨은 "다원주의에 의거한 결속"을 한국 정치의 발전 과제로 제언했다. 22대 총선에 참여하고 있는 공당과 후보들이 마땅히 되새겨야 할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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