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탄핵 사태’ 재발 막는 투표 참여

김우석 방송통신심의위원
김우석 방송통신심의위원

오늘부터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된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분들이 많다. 최근 만난 두 분도 그랬다. 한 분은 현 정부의 행태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했다. 또 한 분은 회사 해외 출장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전투표도 있다고 하니 출장 전에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상황에서 굳이 투표를 할 필요가 있냐'는 투였다. 당혹스러웠다. '이래서 여론조사가 그렇게 나오는구나' 싶었다. 요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방적이어도 너무 일방적인 결과가 예상된다. 언론인,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에 변동이 거의 없을 거라고 한다. 야당의 과반은 당연하고, 개헌 가능 의석을 넘길 수 있느냐가 관전 포인트란다.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유도 다양하다. 정부의 오만과 불통 이미지, 여당의 요령부득, 의대 정원 증원 갈등의 피로감, '대파값'으로 대변되는 물가 문제, 황상무·이종섭 사태 등이었다.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우려를 전했다. 이런 상황이면 윤석열 정부와 '검찰 독재'를 심판하겠다는 범야권 세력이 200석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무리한 입법과 정책이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브레이크를 걸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재명·조국 대표의 발언을 보면, 대통령 탄핵을 시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재명 대표는 과거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당시 문재인 대표보다 먼저 탄핵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또 조국 대표가 직접 제안했다는 캐치프레이즈 "3년은 너무 길다"에서 나타나듯, 앞으로 남은 3년은 그들이겐 너무 긴 시간이다. '차기 대권' 이야기는 사치다. 간신히 구속을 피한 그들에게는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기에 차고도 넘치는 시간이다.

지금 많은 야권 후보가 과거 금기로 여겨지던 '대통령 탄핵'을 공공연하게 말한다. 방탄 국회를 넘어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넘어가면, 그 혼란을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최소한의 균형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분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예전 같으면 이재명 대표의 "셰셰"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겠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하긴, 그 정도의 '사법 리스크'라면 출마도 못 했을 것이다. 한술 더 떠 지지율 3위인 야당의 조국 대표는 2심 판결까지 실형이었지만 출마를 강행했고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20대 유권자의 싸늘하고 분통 터트리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위용을 자랑한다. 출마자들의 온갖 비행이 드러나도 야당은 그냥 밀어붙이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변함이 없다. 그들에 대한 기존의 기대가 아무리 낮다 해도, 지나치게 기이한 현상이다.

2016년 총선이 떠올랐다. 당시 시사 토론 방송마다 당선 의석수 맞히기 퀴즈를 했다. 대부분의 출연자는 여당의 압승을 예측했다. 여론조사가 그렇게 나왔기 때문이다. 막판에 '옥새 들고 나르샤'로 대변되는 당청 간 공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음에도 관성처럼 예측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막상 결과는 딴판이었다. 1석 차이로 여소야대가 됐고 여권은 국회 권력을 잃었다. 그 결과는 '대통령 탄핵'과 '극심한 사회 혼란'이었다. '그래도 설마' 하는 보수층의 안이한 대응이 참혹한 대격변을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는 2016년 총선 패배가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려도 있었지만 막연한 믿음도 있었다. 유권자 개개인은 실망해 치우친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주권자인 국민은 선거마다 매번 적절한 균형을 만들어 주었다. 지난 2020년 총선만 빼고 말이다. 그 반작용으로 이례적으로 이후 대선에서 조속한 정권교체를 만들었지만, 거야의 대선 불복 저항과 몽니로 새로운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새 정부는 정부조직법도 바꿀 수 없었고, 그 결과로 매끄러운 국정 운영은 불가능했다.

만약 총선 결과가 지금의 예측대로 된다면 이 또한 '3년은 너무 길게' 될 것이다. 지난 2년의 외발 정부가 총선으로 두 발을 모두 잃게 되면 남은 3년 동안은 그야말로 '식물 정부'가 된다. 이를 빌미로 대통령 탄핵을 시도할 가능성도 크다. 커지는 국제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국내적으로 또다시 암흑시대를 여는 것이다. 투표를 포기하면 생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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