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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혁명가 베토벤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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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음악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자유를 열망하는 상징으로 자주 사용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은 전투 후 승리를 모스 부호로 알릴 때 베토벤 제5번 교향곡의 오프닝 모티브와 리듬 패턴을 사용했다. 모스 부호는 점으로 표시되는 짧은 신호인 딧(dit)과 선으로 표시되는 긴 신호인 다(dah)로 문자 기호를 표시하는데, 승리를 의미하는 'V'는 '딧딧딧다(•••—)'로서 베토벤 5번 교향곡 첫 부분에서 계속 반복되는 리듬 패턴과 일치한다.

보편적 인류애와 관습 타파를 전하는 것으로 알려진 베토벤 9번 교향곡은 그의 죽음 이후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행사에서 자주 연주됐으며,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한 달 반이 지난 1989년 크리스마스에 열린 축하 음악회에서, 전 뉴욕 필하모닉 지휘자였던 레너드 번스타인은 다국적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과 함께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연주했다. 번스타인은 동서독의 통일을 상징하기 위해 4악장의 '환희의 송가' 가사 중 기쁨을 뜻하는 독일어 'Freude'를 자유를 의미하는 'Freiheit'로 바꿨다.

칠레에서는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고 3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정적과 반체제 인사를 살해한 피노체트 독재 체제 아래서, 여성 수감자 처우에 항의하고 이들을 격려코자, 체포의 위험을 무릅쓴 시위대가 감옥 밖에서 '환희의 송가'를 부르기도 했다.

1989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있었던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위에서도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이 사용됐다. 시위대는, 해산하라는 계엄군의 방송 소리에 맞대응해, 지지자들과 인근의 노동자들이 제공한 자동차 배터리와 확성기를 조합해 임시 방송시스템을 만들고 베토벤 9번 교향곡의 '환희의 송가'를 틀었으며, 시위대 리더 중의 한 명이었던 팽 리즈위는 '환희의 송가'가 국가에 대한 그들의 희망을 요약했다고 말했다. 계엄군의 탱크에 대항할 수 있었던 그들의 유일한 무기는 음악이었으며, 그 음악은 그들에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연대감을 가져다줬다고 한다.

'환희의 송가'는 1985년에 유럽 공동체(1993년부터 유럽연합)의 공식 찬가가 됐으며, 2008년에는 세르비아로부터의 독립을 도와준 유럽연합에 대한 보답으로 코소보가 이 노래를 임시 국가로 채택하기도 했다.

해석의 몫은 각자에게 있었기 때문일까? 자유를 억압하는 쪽에서도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이용했다. 1942년에 나치는 이 교향곡이 영웅의 이미지에 맞는 음악이라고 생각해, 독재자인 히틀러의 생일 기념 음악회에서 푸르트뱅글러의 지휘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도록 했으며,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으로 악명이 높았던 과거 로디지아(현 짐바브웨)의 백인 우월주의 독재 정부는 '환희의 송가'에 자신들이 만든 가사를 붙여 국가로 삼았다.

베토벤은 자기의 음악이 이렇게 혼란스럽게 쓰여 질 줄은 몰랐겠지만,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으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그는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와 함께 더 민주적인 세상이 올 것을 강렬하게 믿었으며, 그의 음악은 오늘날에도 계속해 사람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정치·사회적 갈등 속에서 일관된 행동을 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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