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디자인의 대세가 되어버린 심플(SIMPLE). 그러나 복잡함과 혼란스런 것의 차이는 구분되어야하며, 단순한 것과 빈약한 것 또한 구별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상존한다. 인지과학의 대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도널드 노먼의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는 단순화한 모델일수록 사용자 편의를 위한 부가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책이다.
시작은 전 미국 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엘 고어의 책상이다. 지저분하고 복잡한 책상에 앉은 고어의 사진은 얼핏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주인만 알 수 있는 질서와 구조가 있다. 저자는 중요한 꼭지마다 사진을 제시하는 논증 방식을 통해 단순한 게 무조건 편리하다거나 효율적일 거라는 생각에 일침을 놓는다. 대표적으로 버튼이 적은 계산기와 많은 계산기(32쪽)의 비교다. 누가 봐도 복잡한 계산기가 사용하기 편리해 보인다. 그러므로 "단순함과 복잡함의 차이는 구조에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참이다.
'사람들은 복잡한 걸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능을 포기할 마음도 없다.'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는 심플한 것이 실용적으로도 편리하거나 복잡함에 대안일 수 없다는 사실을 빼어난 통찰력과 사례로 펼쳐낸다. 도널드 노먼에 따르면 때때로 우리는 복잡함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말하자면 "복잡함이 필요 없는 곳에서도 복잡함을 찾는다"는 얘기. 예컨대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한 과정을 보자. 자판기에서 버튼 한 번에 커피를 받아 마실 수도 있고, 커피를 분쇄하고 물을 끓이고 적정량의 커피를 여과지에 넣고 물을 내리면서 풍미를 음미하는 과정까지 즐기는 방법도 있다. 물론 선택은 자유다.
책의 핵심은 "복잡함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다스릴 수 있다."(169쪽)는 것이다. 그래서 배움이 없으면 대처도 없다고 말한다. 단순함은 마음속에 있으니 복잡한 것도 숙달되고 작동원리와 상호작용 규칙을 알고 나면 간단해진다면서 저자는 소설 '에덴의 동쪽'의 자동차 시동 거는 장면을 들려준다. 존 스타인 벡이 무려 반쪽이나 할애하며 장황하게 설명한.
복잡함을 단순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핵심 문제에 대한 개념을 새로 세우는 것이다. 저자는 디자인적 사고를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일이라고 정리하면서, "클라이언트가 해결해 달라고 하는 문제는 절대로 해결하지 마라"고 조언한다. 클라이언트는 증상에만 반응하기 때문. 이를테면 디자이너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말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창의성에 죽고 사는 집단이 오히려 고정관념에 함몰되어 몰락하는 사례를 무수히 보았다. 새롭고 기발하고 쇼킹한 것에만 빠진 나머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구성하고 자기도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여럿 보았다. 모두가 시류만 쫓다가 기본을 놓쳐서 벌어진 결과들이다.
심플한 일상도 좋지만 때론 적당한 복잡함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긴장하는 삶 또한 필요하다고 환기시켜주는 삶의 지침서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 너무 단순함에만 목매다가 단순한 인생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모골이 송연하다. 오래 전 내 집 드나들 듯이 찾던 오디오가게 주인은 늘 강조했다. "좋은 스피커는 아무리 소리를 키워도 시끄럽지 않아요."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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