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실거주 시즌 2·3’ 나오지 않기를

세종본부 홍준표 기자
세종본부 홍준표 기자

게임 참가자는 게임에서 이기고자 모든 것을 던진다. 게임은 심판이 있든 없든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그리고 승자는 모든 것을 가진다. 그러나 승자는 이기려고 너무 많은 힘을 쏟았다. 기쁨도 잠시, 이내 주저앉아 버린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잃는 것이 더 크다. 승자의 저주다.

2024년 4월 10일, 또 하나의 게임이 끝났다. 이변은 없었다. 정치·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점쳤듯 4·10 총선은 정권심판론 바람을 탄 범야권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결과가 뻔히 보여서였을까. 최근 세종 관가에서 가진 식사 자리에서 총선 이후 정국에 대한 생각을 나누다 '웃픈' 표현 하나를 배웠다. 바로 '실거주 시즌 2'라는 말이다.

요컨대 지난 연말 실거주 의무제 폐지 법안이 불발된 상황에 빗댄 말로 '정책 만드느라 고생했는데 이번에도 법안 개정 실패로 서랍에서 꺼내 보지도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정부는 지난해 1·3 부동산 대책을 통해 전매제한을 완화하고 실거주 의무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은 1년 넘게 국회에 계류됐다. 여소야대로 여당의 국회 장악력이 떨어져 현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행정부가 야당을 상대로 설득하고 이해를 구했지만 '다수당'은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실거주 시즌 1보다 앞선 프롤로그도 있더랬다. 2년 전 일이다. 당시 정부는 소규모 사업장 근무자와 벤처 업계 산업 특성을 고려해 30인 미만 사업장에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 일몰 시한을 연장하려 했다. 하지만 이 법률 개정안 역시 여야 간 견해차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헤어질 무렵 그이는 "여소야대가 심화할 텐데 실거주 시즌 2가 얼마나 많아지겠느냐. '현 정부의 기능은 이미 끝났다'는 생각이 들면 일 안 하고 납작 엎드릴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정권과 정책의 호오를 떠나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문득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234명 찬성으로 가결된 후 벌어진 상황이 떠올랐다. 2017년 정부 신년 업무보고에서 새로운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운 '재탕 일색'이었다. '탄핵 정국, 권한대행 체제에서는 어차피 새로운 정책이 추진될 수 없다'는 판단과 '좋은 아이디어는 차기 정권에서 사용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이 같은 결과를 낳은 것으로 분석됐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제1야당이 175석으로 단독 과반을 확보했다. 범야권으로 시야를 확장하면 192석에 달한다. 국정 주도권이 사실상 대통령에서 국회로 넘어갔다. 게임의 승자는 '못마땅한 정권'을 혼쭐낸 국민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치 지형은 지난 시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야권은 검찰 개혁 공약 등 지지층이 원하는 법률안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해 의결할 것이고,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거부권 행사로 버틸 테다. 2년간 벌어졌던 악순환의 되풀이다.

이 상황에서 공직사회도 국회 상황 탓에 실거주 시즌 2, 시즌 3가 잇따른다며 윤석열 정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멈춰 서 있기만 한다면 국민(여야 정치인도 결국 국민이다)이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상황이 아닐까. 내달 30일부터는 국민이 4·10 총선이라는 게임의 결과를 돌려받을 테다. 부디 관가가 여소야대 정국에 휘둘리지 않고 국태민안에 주력하기를 바라 본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