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당시 나는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동생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형이 있는 독일로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랜 타국 생활에 지쳐있던 나에게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동생은 차분한 목소리로 아버지 회사가 부도가 났고, 회사를 정리하고 잠시 기분 전환을 위해 여행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평생을 소같이 열심히 일만 하셨던 아버지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 여행이 우리 가족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수 있게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독일에 도착한 아버지를 보는 순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가볍게 안아드렸다. 아버지는 생애 처음 해외여행을 큰아들이 있는 독일에서 즐겁게 보내셨다. 아침마다 집앞 공원을 어머니와 단둘이 손잡고 걸으시며 아침에 이런 여유는 내 평생 처음 느껴본다며 정말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는 천안에 있는 대기업에 취업하셨고 2017년 1월 69세가 될 때까지 일하셨다. 아버지는 "내 나이 69세에 아직도 회사에서 할 일이 있어 남아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며 자랑스러워하셨다.
아버지는 매달 월급을 받으면 자신의 용돈 일부만 남기고는 모두 어머니에게 보내셨다. "민석 엄마! 이 돈으로 맛있는 소고기 사무라, 손자들 용돈도 많이 주고…." 한 번씩 어머니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 듯 자주 말씀하신다.
아버지는 2016년 12월 악성중피종이라는 석면으로 인한 불치병 판정을 받으셨다. 20대 중반에 석면 공장에서 일하신 것이 원인이었다. 잠복기가 30년 이후라 결국은 아버지 나이 69세에 발병해서 그해 12월 24일 새벽 마지막 한 번의 깊은 숨을 들이켜시고 우리 가족 곁을 영원히 떠나셨다.
당시 동생은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한국으로 오는 데 걸리는 시간 동안 스스로 생의 마지막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거친 숨을 내쉬며 꼬박 이틀을 버티셨다. 그후 도착한 동생의 목소리 듣고선 믿을 수 없게 거친 숨소리가 편안해지셨다. 그리고는 하루를 동생 목소리를 듣고 반응하시며 우리에게 마지막 작은 선물을 주시고 그렇게 떠나셨다.
평생 자신의 꿈은 포기하시고 가족을 위해서 끝까지 헌신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 번씩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우리 민석이가 대학 교수가 되면 얼마나 좋겠냐? 교수 되는 게 그렇게 힘들다던데, 너는 할 수 있겠나?" 그 말에 나는 늘 자신은 없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 아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대학교수가 되었다. 생전에 이 소식을 알려드릴 수 있었다면 당신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아버지는 이런 말씀도 자주 하셨다. "부모는 자식 농사를 잘 지어야지! 돈만 많이 벌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들을 수 있다면 전해드리고 싶다. "아버지가 그토록 자식 농사! 하셨는데 자식 농사 그래도 성공하셨습니다. 큰아들은 대학 교수가 되었고 작은아들은 대기업 이사가 되었으니 아버지 인생의 큰 목표 하나는 달성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자식 걱정하지 마시고 하늘에서 아버지가 평소 하고 싶으셨던 것들 모두 하시고 편안히 쉬세요!" 그리고 한번도 하지 못했던 이 말도 오늘 꼭 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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