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군위는 복권이다

군위군에서 연락이 왔다. 단 한 문장이 필요하다는 요청이었다. 짐작이 갔다. 군위군의 가치를 높이는 한 문장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군위군 역시 다른 지역처럼 가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최근 군위의 가장 큰 이슈는 2030년 개항을 목표로 한 신공항이었다. 공항이 온다는 것은 비행기만 온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이 몰리고 일자리가 생겨나고 돈이 돈다라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군위군은 '신공항 유치' 일자리 생산' 등과 같은 워딩을 남발하고 있었다. 내가 군위군수님이어도 이런 워딩을 선택했을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선택한 워딩을 통해 그것을 얼마나 세련되게 말할 수 있나이다. 즉, '신공항', '일자리'라는 재료를 통해 사람들에게 얼마나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었다. 이 순간이 바로 기획이 필요한 시간이다.

군위라는 단어를 읽었을 때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수도권 사람에게는 그저 수많은 지방 중 하나처럼 느껴질 것이다. 심지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조차 모를 수 있다. 광역시에 사는 사람은 어떨까? 왠지 아이보다는 노인 인구가 많을 것 같고 한적한 논, 밭이 떠오를 수도 있다.

기획을 할 때는 복잡할수록 최대한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 현재 군위의 이미지에서 설레는 포인트를 잡는 것이 힘들다면 단순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가장 설레는 단어를 찾아 그 단어의 향기를 군위에 입혀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맹목적인 단어여도 좋다. 사람은 감성의 동물이기에 결과에 관계없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설레는 단어에 마음을 연다. 그것이 무엇일까 한 참을 찾아 헤맸다.

나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사람을 향했다. '요즘처럼 사람들이 웃지 않는 때가 있었을까?' '왜 존버하자라는 말을 이토록 많이 할까?' 나는 생각의 바다에 풍덩 빠져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복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특히 월요일 퇴근길이면 복권을 파는 가게 앞에 사람들의 줄이 더욱 길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왜 저 사람들은 복권을 살까? 저들 중 대부분은 복권에 당첨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 텐데… 왜 월요일이면 사람들이 복권을 더 많이 살까? 그것이 직장인들이 한 주를 버티는 힘일까?'와 같은 생각도 떠올랐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복권만큼 사람들이 설레어하는 단어가 없구나!' 복권은 마치 마약 진통제와 같았다. 복권을 사는 순간 삶의 고통이 잊힌다. 혹시라도 당첨되면 어쩌나 하고 신변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이민 가는 상상을 한다. 그런 상상으로 한 주를 버티는 사람이 꽤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에 관계없이 그 순간의 고통을 잊게 해 주니 현대인들에게 이것은 영락없는 진통제였다. 이런 설레는 단어를 나는 가져와 군위에 씌웠다.

'군위는 복권이다'

이 광고를 SNS에 올리는 어떤 선배 카피라이터분은 이런 댓글을 선물해 주셨다. '복권은 꽝이 더 많은 것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카피가 가진 진짜 힘은 여기서 발휘된다. 어떤 기업이나 기관, 도시에 슬로건을 써줄 때는 그들의 고객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병원 입구에 '과잉진료가 없는 병원'이라는 카피를 써두었다면 그것은 환자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다. 그 글은 더욱 무섭게 병원 관계자에게 다가온다.

'군위는 복권이다' 역시 마찬가지다. 당첨된 복권일지 꽝일지는 군위군에게 달렸다.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어르신들은 우리가 부정적인 말을 내뱉을 때 혼을 내신다. "얘야, 말이 씨가 된다". 그만큼 말에는 에너지가 있고 힘이 있다는 걸 아시는 것이다. 나는 이 카피의 보이지 않는 빈칸을 군위군에서 채워주었으면 좋겠다.

'군위는 (당첨된) 복권이다'.

'어떻게 광고해야 팔리나요의 저자' (주)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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