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52> 이원수 작사-홍난파 작곡, '고향의 봄'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고향의 봄'관련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봄꽃들이 만발하고 있다. '고향의 봄'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부르는 동요다. 이 노래는 1926년 '어린이'에 실린 이원수의 시에 홍난파가 곡을 붙였다. '고향의 봄'은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유년을 불러온다. 1920년대는 일제의 대규모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의 결과로 전국의 농촌이 황폐화된 시기였다. 일제의 근원적인 수탈 아래 대부분의 농민은 소작농으로 전락했고 화전민 수가 120만명을 웃돌았으며 살 길을 찾아 만주, 연해주 등으로 떠나는 이주자가 100만명에 달했다.

'고향의 봄'은 봄으로 상징되는 유년의 상실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라는 현실 아래 고향, 임, 국권 상실 등 여러 의식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한다. 봄, 임, 고향은 그 자체로 저항의 의미를 가졌으며 광복이나 독립 같은 광의적 의미를 환기하는 것이 되었다. '고향의 봄'은 실재하는 고향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조국의 등가물로서 의미 확장이 이루어졌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으로 상실과 결핍을 위로받고자 하는 모습에는 이 시기 대량으로 발생한 국내외 유이민의 고달픈 삶이 드러난다. 타향에서의 삶은 끊임없이 고향으로의 회귀를 꿈꾸게 했다. '파란 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필시 좋은 소식을 알리는 봄바람이다. 수양버들은 기쁜 소식에 춤을 추고 있지만 옛 고향의 추억일 뿐 화자는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라는 반복을 통해 행복했던 과거를 복원하고자 한다.

이들이 돌아가고자 하는 고향은 가난에 찌들린 고향이 아니라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꽃동네 새 동네'에 나타나듯 미화되고 다듬어진 완전한 고향이었다. 이것은 생활 근거지로서 고향이 아니라 이상화된 조화롭고 풍요로운 세계였다. 실향이라는 사회적 운명 속에서 식민지인들은 패배주의에 찌들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고향의 봄'은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가지는 견인력을 통해 시대 전횡에 휘둘리며 타관을 떠도는 식민지인들에게 암담한 현실을 이겨나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고향의 봄'에는 인류가 장구한 세월 동안 꿈꾸어 온 낙원의 모습이 담겨 있다. 아름다운 자연과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는 이곳은 모든 결핍과 고통이 해소되는 약속의 땅이었다.

'고향의 봄'은 4/4박자, 두도막 형식, Ⅰ, Ⅳ,Ⅴ도 3개의 화음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노래다. 하지만 펼침화음을 이용하여 단조롭지 않게 구성했다. 초등학생들이 리코더로 가장 많이 연주하던 노래가 이 노래였으며 수많은 합창단의 단골 레퍼토리였다. 단순함은 모든 장식을 제거한 본질이며 때 묻지 않은 동심을 나타낸다.

'고향의 봄'은 고향을 잃은 식민지 대중뿐만 아니라 해방과 6·25를 거치며 고향을 떠나 살 수밖에 없었던 실향민의 정체성을 확보해 주는 터전이 되었다. 또한 1960~1970년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이농한 사람들의 망향까지도 절절히 달래주는 노래가 되었다. '고향의 봄'은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만물이 소생하는 새 세계를 꿈꾸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고향의 봄'은 어린이를 위한 노래였지만 대중의 보편적 염원을 담으면서 세월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는 만인의 노래가 되었고 애국가보다 더 많이 불려지는 민족의 노래가 되었다. 이원수의 성장지이자 노래의 배경이 된 창원에서는 해마다 '고향의 봄 예술제'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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