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의 안보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국제 정세는 미국 주축의 자유민주주의와 중국 주축의 공산전체주의로 재편됐다. 동북아 안보는 자유진영인 미국-일본-한국과 공산진영인 중국-러시아-북한의 대결 구도로 또렷해지고 있다. 안보 전문가들은 "현재 한반도 주변은 구한말 121년 전 상황과 너무나 비슷하다"면서 "우리나라가 우물안 개구리로 좌고우면하다 나라를 빼앗긴 우(愚)를 되풀이해선 안된다"고 지적한다.
◆한반도 정세, 121년 전 상황 판박이
지금 한반도 정세를 보면 121년 전 상황과 판박이라는 지적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세계의 패권국은 영국이었다. 영국이 세계 전체를 경영하기 위한 그레이트 게임의 상대는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다른 제국주의처럼 대양 진출을 하고 싶어했다. 러시아는 먼저 발트해와 흑해 방면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영국이 이곳을 봉쇄하자 러시아는 태평양 방면으로 진출하려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태평양함대까지 설치했다. 영국도 러시아 견제를 위해 거문도에 군사기지를 만들고 대치했다.
당시 영국은 동북아에서 러시아를 견제해줄 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영국은 아시아의 신흥국가였던 일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 1903년 영일동맹을 체결했다.
영일동맹은 러시아의 태평양 방면 진출을 막기 위해 영국에서 일본을 끌어들여 체결한 동맹이다. 영일동맹은 일본을 국제정치 무대 중앙으로 끌어올리고 군사적 역량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해당 조약으로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국제적으로 용인됐고 경제발전, 지역패권 도약의 기틀이 마련됐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일본은 영국을 대신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인다. 1904년 러시아에 선전포고하고 1905년 동해해전에서 러시아함대를 격파하고 승리한다. 그리고 일본은 1905년 미국과도 협의를 맺게 된다. 소위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이같은 밀약으로 일본은 한반도를,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게 된다.
◆미일 동맹 업그레이드…필리핀도 가세
최근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밀착이 강화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정상회담을 갖고 중국의 공세적 외교·안보 행보 및 북한의 위협 등에 대응해 양국간 국방 안보 협력을 강화키로 했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사일 공동개발과 공동 생산을 위해 방위산업 협력·획득·지원에 관한 포럼(DICAS) 소집 ▷평시 및 유사시 상호운용성 강화 등을 위해 양국 군의 지휘·통제 체제를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또 ▷극초음속 위협 대응 위한 활공단계요격기(GPI) 개발 추진 방침 재확인 ▷미국·일본·호주간 미사일 방어 체제 네트워크 구축 ▷미국·일본·영국간 정기 합동 군사훈련도 실시키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일본은 국방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위·통제구조 현대화, 원만하고 효과적인 방식의 협력을 위한 양 국군의 계획성, 상호운영성 증대작업을 진행중이다. 이것은 미일 동맹 출범 이래 가장 중요한 업그레이드다. 미일 양국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 이제 미일 동맹은 전 세계의 등대가 됐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도 "이번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는 법치주의에 근거해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를 단호하게 수호해 나가기 위해 양국이 글로벌 파트너로 함께 대응해 나갈 것임을 확인했다. 일본은 동맹국인 미국과의 단단한 신뢰관계 속에서 중국에게 대국으로서 책임을 다하라고 계속해서 촉구해 나갈 것이다"고 표명했다.
필리핀도 미국과 안보공조를 공고히 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필리핀은 11일 워싱턴에서 첫 3자 정상회의를 갖고 대중국 견제 등을 포함한 안보 공조에 뜻을 같이했다. 또 필리핀은 미국과 함께 22일(현지시간)부터 다음 달 10일까지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겨냥한 '발리카탄' 합동훈련을 실시한다. 양국 군 약 1만6천770명이 참가해 적군에게 빼앗긴 대만과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인근 필리핀 섬들을 탈환하고 적군 군함을 격침하는 시나리오를 담고 있다.
◆한국, 주변 정세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
2차대전 이후 냉전은 미국과 러시아의 패권다툼이 주축을 이뤘다. 하지만 지금은 국제 정세는 미국 주축의 자유민주주의와 중국 주축의 공산전체주의로 재편됐다.
한반도 주변의 안보 지형도 급변하고 있다. 영국과 러시아가 패권을 다투던 121년 전 상황과 닮은꼴 형국이 벌어지고 있다. 플레이어만 영국이 미국으로, 러시아가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들 중간에 일본이 자리하는 것은 당시와 마찬가지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고 대남 도발을 일삼고 있다. 양안(대만과 중국) 관계도 일촉즉발 전쟁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또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자 인도양, 태평양 주변 국가들의 안보연합체인 '인도-태평양전략(쿼드, 오커스, IPEF)'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쿼드에는 미국·인도·호주·일본이, 오커스에는 미국·영국·호주가 참여한다. 여기에 한국은 아직 참여를 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과 일본의 군사밀착이 우려된다. 미국은 4·10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에 글로벌 작전권 '연합사령부' 창설을 검토하고 있다. 동북아 안보 균형추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사평론가 신인균(국방TV 운영) 씨는 "지금도 121년 전과 닮은 한반도 상황이다. 당시에도 바깥 상황 모르고 친청파, 친러파, 친일파, 쇄국주의 등 무한 내분을 벌이다 나라를 뺏겨버렸다"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가 미래를 생각해 미국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미국 국방부 펜타곤 출입 김동현 기자도 "미국은 세계 질서를 다스리는 경찰국가를 자칭하고 있다. 한반도는 세계 여러 안보지역 가운데 하나다"면서 "한국도 한반도 주변의 중국, 일본, 대만 등 동북아 전체 안보상황을 거시적으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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