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세대 갈등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급속한 고령화에서 비롯된 세대 갈등은 기존과 다른 양상으로 노동시장, 정치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올해 총선에서도 젊은 층과 고령층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 일이 있었다.
개혁신당이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를 폐지하는 대신 교통비 바우처를 지급하겠다고 하자, 대한노인회 측이 "지하철 적자와 노인 무임승차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맞섰다. 이준석 대표의 "무임승차 최다 역은 경마장역"이라는 말을 두고는 "세대 갈라치기" "패륜적 발언"과 같은 감정 섞인 대응이 이어졌다.
세대 간 입장이 극명하게 맞서는 또 다른 분야는 '국민연금'이다. 현재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연금 개혁안 도출을 위해 시민 대표 500명이 참여하는 숙의 토론회를 하고 있다.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공론을 형성해 보자는 취지다. 논의되는 안은 두 가지다. '더 내고 더 받기'(1안·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와 '더 내고 그대로 받기'(2안·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0%)다.
공론화위는 네 차례 토론을 거쳐 이달 22일 설문조사 결과를 포함한 토론회 결과를 발표한다. 연금특위는 공론화를 거쳐 나온 개혁안을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반영할 계획이다. 그런데 토론회를 지켜본 시민들은 '과연 모든 세대가 비슷하게 희생하는 방안이 맞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지난 13, 14일 유튜브로 생중계된 숙의 토론회 실시간 댓글 창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획기적인 방안이 안 나오면 개혁이 아니라 연명치료나 마찬가지" "안 내고 안 받는 방안은 없느냐"는 성토가 이어졌다. 논의 중인 1안과 2안을 비교한다거나 장단점을 이야기하는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젊은 층 사이에선 국민연금의 미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공론화 과정에 있는 두 방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은퇴 후 자신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미래 세대가 질 부담은 제대로 검토한 결과인지, 일부 세대의 큰 희생을 담보로 한 건 아닌지 의구심을 갖는다. 이해관계가 얽힌 탓에 정치권에서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도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각종 전망을 볼 때 지금과 같은 연금 구조가 지속한다면 머지않아 진통을 겪어야 한다. 연금제도의 틀을 손대지 않은 채 세부 지표 조정에만 골몰한다면 젊은 층의 불신은 영영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진정한 연금 개혁이 아닌 '손질' '연명치료'란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최종 개혁안엔 모든 세대가 동의할 수 있는 구조 개혁 방안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다. 여러 전문가가 제안했듯 국민연금을 신·구연금으로 분리하는 방안, 연금 운용 성과 개선안 등 다양한 구조 개혁 아이디어에 귀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연금 개혁은 빨리 할수록 미래 세대의 부담이 가벼워진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연금 개혁이 1년 늦춰질 때 발생하는 추가 손실은 수십조원에 이른다는 전망도 있다.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단 두 차례만 개혁이 이뤄졌다. 지난 정부에서도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수포로 돌아갔었다. 어렵게 이뤄진 연금 개혁의 기회가 세대 갈등의 새로운 불씨로 연결되지 않도록 현명한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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