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쉰다. 어릴적 잠결에 희미하게 맡았던 밥 짓는 냄새가, 할머니댁에서 맡았던 향이, 여름 밤 공기의 냄새가 스쳐간다. 냄새는 곧 추억의 잔상을 불러온다.
올해로 60회를 맞은 베니스비엔날레가 오는 20일 개막을 앞두고 카스넬로 공원 내 자르디니에서 VIP와 언론을 대상으로 프리뷰 전시를 선보였다.
내년에 개관 30주년을 맞는 한국관은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ies)가 펼쳐지고 있다. '오도라마 시티'는 향을 의미하는 '오도(odor)'에 드라마의 '라마(-rama)를 결합한 단어다.
30여 년간 '향'을 주제로 작업해 온 구정아 작가는 이번 한국관 전시를 위해 지난해 6월부터 3개월간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으며, 전 세계 참여자들의 사연 약 600편을 수집했다.
작가는 이 중 도시 향기, 밤 공기, 사람 향기, 서울 향기, 짠내, 함박꽃 향기, 수산시장, 공중목욕탕, 햇빛 냄새, 안개, 장독대, 밥 냄새, 조부모님댁, 장작 냄새, 오래된 전자제품, 나무 냄새 등 16개의 범주로 분류된 사연을 선정해 '한국의 냄새 풍경'을 조성했다. 전시장 곳곳에 놓인 하얀색 볼로부터 이 향들을 맡을 수 있다.
특히 작가는 향이 기억에 어떻게 작용하는 지에 집중하며 우리가 공간을 감지하고 회상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향의 본질을 탐구하며 분자를 들이쉬고 내쉬는 과정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비물질주의, 무중력, 무한, 공중 부양이라는 작업 주제로 확장되는데, 전시장에 놓인 설치 작품도 이 같은 주제를 반영한 것들이다.
전시장에는 뫼비우스의 띠 형태로 부유하는 두 개의 나무 조각과, 사람 형태의 브론즈 조각이 설치돼있다. 이 브론즈 조각은 앞서 작가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에도 등장한 캐릭터 '우스'로, 태아를 연상케 하는 중성의 생물이 익살스러운 제스처를 보여준다. 공중 부양한 듯한 모습의 이 캐릭터의 코에서는 2분에 한번씩 작가가 만든 '오도라마 시티 향'이 분사돼 전시장을 채운다.
전시장에서 만난 구 작가는 "관람객들이 우선 전시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며, 굳이 작품을 이해하기보다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며 "사실 비엔날레 기간에 관람객들이 볼 전시가 너무 많으니, 한국관에 와서는 조용하게 사색하며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이설희, 야콥 파브리시우스 예술감독은 현지시간 17일 오전 진행한 프레스 오프닝에서 "향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의 시초 또는 근간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장 풍경은 관객이 향을 경유해 무엇을 보는가에 달려있다. 작가는 물리적 세계와 비물질적인 세계의 틈, 즉 명확한 경계가 없는 곳으로 경험의 또 다른 확장을 끌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베니스비엔날레는 비엔날레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 있는 국제 미술전이다.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울만큼 29개의 국가관에서 다양한 전시가 펼쳐진다. 비엔날레는 11월 24일까지 이어지며, 한국관 전시 외에도 한국 작가들이 참여하는 한국관 30주년 특별전시 및 병행전시들이 베니스 곳곳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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