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눈이거나 겨우 글자를 익힌 할매 할배들이 문해(文解) 교실에 다녀 한글을 배운 뒤 인생 첫 시(詩) 쓰기에 도전했다. 이들이 쓴 시를 모아 시집을 펴냈다.
시 쓰는 경산 할매 할배들의 시집 '시 그거 별거 있나' 출판기념식이 24일 오전 경북 경산시 계림청소년수련원 대강당에서 열렸다.
(재)운경재단 경산시재가노인통합지원센터(센터장 최정호)와 환토리연구소(대표 김지권)는 지난 2021년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사회참여활동으로 '은빛나루 문해교실'을 열었다.
2021년 첫해에는 글을 전혀 모르는 까막눈이 어르신 20명이 문해교실에 참여해 13명이 한글을 익힌 후 교복을 차려 입고 졸업식을 했다.
이듬해는 문맹자 6명이 새로 들어왔고, 전년도에 문해교실을 통해 글을 배운 어르신들이 함께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글을 배운 어른신들이 지난해에는 손준호 시인으로부터 시 쓰기 지도를 받았다.
어르신들에게 제목을 제시하고 시 쓰기 숙제를 내면 어르신들은 직접 쓴 시를 낭독하고 손 시인과 소통하면서 시를 다듬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60대 중반에서 80대 후반까지 '늦깍이 시인' 27명이 39편의 시를 썼다. 이에 더해 사회복지사, 생활지원사, 손 시인 등이 쓴 시 9편 등 모두 48편의 시를 엮어 이번 시집을 펴냈다.
시집은 가난과 여자라는 이유 등으로 글을 배우지도 못한 한과 6·25 전쟁, 보릿고개를 넘은 고단했던 과거의 일상 등을 꾸밈없이 시로 함축했다.
'말도 마소!/보릿고개/그 때는/멍석 깔고 보리밥도/어찌 그리/맛 있으랴'(김화자 할머니의 '보리밥')
'12살에 만난 6·25/ 배고프고 배고파서/쑥 뜯어 쑥 밥 먹고/충청도 양반도시/학교가 웬 말이야?/이제 사 글을 배워/세상을 배운다'(박정자 할머니 '보릿고개')
'낙엽이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세월이란다/세월 따라 눈물 흘렸더니/어느새 늙어 있더라/ 말로 우째 다 하노/눈물이 날라 칸다/마음에 구멍이 날라 칸다'(윤복순 할머니 '낙엽')
'늦깎이 시인'들은 "난생 처음 시를 쓰면서 새로운 재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 즐거운 도전이었고, 내가 쓴 시가 시집으로 나오니 마치 유명 시인이라도 된 듯 기쁘다"며 " 특히 아들과 딸, 손자 손녀에게 자랑할 수 있어 기쁘고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자작시 '흔들바위'를 낭독한 박연석 (89) 할아버지는 "62년 동안 해로했던 아내를 5년 전 먼저 떠나 보냈다. 지난 5년 동안 겸상을 해 같이 밥을 먹는 것처럼 살았고, 사진을 베개 곁에 두고 생활하면서 아내를 생각하며 이 시를 썼다"고 말해 참석자들 눈시울을 붉혔다.
정말조(80) 할머니는 "내가 쓴 시를 낭독하니 처음에는 떨렸지만 너무 뿌듯하고 좋았다. 진짜 시인이 된 것 같고 너무 좋다. 소녀로 돌아가는 느낌이며 꿈꾸는 것 같다. 덕분에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손준호 시인은 "시를 지도하면서 어르신들 가슴속에 글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았다. 가슴속에 오래 심어 뒀던 소년 소녀 같은 마음의 언어들이 시로 쏟아져 나왔다. 진정성이 있어 아주 좋았다"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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