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깊고 오랜 전통 속에 축적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 빌모트 파운데이션 전시장에서 만난 이배 작가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이날 공개된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 '달집 태우기(La maison de la Lune Brûlée)'는 그의 말처럼 가장 한국적인 전시였다. 그의 고향인 청도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모여 행하는 세시풍습 전통 의례인 달집 태우기가 지구 반대편 베니스에서 펼쳐졌다.
전시장 입구의 가림막을 걷자 어두운 긴 복도의 벽면을 온통 영상이 채우고 있었다. '타닥타닥' 타는 소리, 웅장한 음악과 느리게 움직이는 화면에 관람객들이 압도당한 듯 바라봤다.
작가는 전시를 앞둔 지난 2월 24일, 세계 각지에서 보내 온 새해 소원을 모아 전통 한지 조각에 옮겨 적고 청도에 설치한 달집에 묶어 함께 태웠다. 이 과정을 담은 영상을 비디오 설치작품 '버닝(Burning)'으로 제작해, 입구에서 주 전시공간으로 이어지는 공간에 상영한 것이다.
전시 공간 입구에는 대형 평면작인 '불로부터'가 우뚝 섰다. 절단된 숯을 타일처럼 배열했는데, 보는 이들마다 '이게 숯이라고?'하며 들여다본다. 검다고만 생각했던 그 숯이, 고온에 구워지며 크리스탈화돼 영롱하고 깊은 빛을 뿜어내는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어 그 너머로 바닥과 벽면에 굽이치는 '붓질' 설치작품 3점을 만나게 된다. 작가는 이탈리아 파브리아노의 친환경 제지를 전통 배접 기법으로 공간의 바닥과 벽에 도배하고, 청도의 달집이 남긴 숯을 도료 삼아 힘찬 붓질을 그어냈다. 평면 회화를 입체적 공간에 그려낸 시도인 셈이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기 전 관람객들에게 신발 커버를 나눠주는 것도 바닥이 종이이기 때문.
공간 안쪽으로는 짐바브웨의 검은 화강암을 깎아 세운 '먹'이 우두커니 서있다. 높이 4.6m에 달하는 이 작품은 실제 먹과 같은 모습으로, 공간의 중심을 지지하고 있다. 거대한 화강암의 원래 무게는 23t(톤)이었으나 물 위에 집을 지은 베니스의 특성상 작품 무게가 3t을 넘길 수 없어, 작가는 내부를 깎아내고 또 깎아냈다.
그는 "먹 작품을 만들고 다시 운송하고 속을 비워내는 과정이 거의 1년 가까이 걸렸다. 비워내면서 먹을 꼭 세워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먹은 사실 한국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먹이라는 매개체로부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개인의 표현이 가능했고, 거기서부터 동양의 문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불에서 시작해 땅을 거치는 전시는 물로 마무리된다. 작가는 베니스의 운하로 이어지는 전시 공간 출구에 노란 유리 패널 천장의 임시 구조물을 설치했다. 온통 노란 빛의 출구에 들어서면 작가가 고향 땅 청도의 달집을 비추는 대보름의 달빛을 그대로 옮겨오고자 했다는 설명을 단번에 이해하게 된다.
작가는 "이번 전시는 처음으로 영상 작업을 제작하고, 공간 전체를 종이로 배접하고, 대형 화강암으로 먹을 만들고, 청도의 달빛을 구현하는 모든 과정이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며 "우리의 전통 민속 의식인 달집태우기를 현대미술의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한국의 전통 문화를 현대와 연결하고 새로운 열림을 모색하는 전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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