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를 놓치고 폭풍이 몰아치듯 일하다 퇴근한 40대 직장인 A씨는 단골 음식점 문을 열면서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한다.
"꿀꺽꿀꺽 꿀꺽."
그는 메마른 식도를 따라 한줄기 차가운 기운이 뱃속에 퍼지자 비로소 메뉴를 보며 무슨 음식을 먹을지 고민한다.
단숨에 맥주를 들이켜며 긴장을 푸는 것은 현대 애주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비슷한 장면은 500여년 전에도 있었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며 '95개 논제'(반박문)를 쓴 마르틴 루터(1483~1546)가 그 주인공이다. 95개 논제의 철회를 요구하는 제국 의회에 소환된 루터는 손에 땀이 배고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느낀다. 그 순간 루터의 비서가 도기로 된 1ℓ(리터)짜리 맥주잔을 들고 나타난다. 루터는 단숨에 맥주를 마신 뒤 의장을 향해 걸어 나간다. 얼굴에 홍조가 번진 루터의 뚝심 있는 연설은 세계사를 바꾼다. 1521년 4월 17일 '마르틴 루터 심문' 때의 일이다.
일본의 유력 주류업체 산토리 등에서 맥주 제조 전문가로 일하다 퇴직한 무라카미 미쓰루(村上満)는 최근 번역 출간된 '세계사를 바꾼 맥주 이야기'(사람과나무사이)에서 이처럼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에 등장하는 맥주를 조명한다.
맥주가 역사에서 긍정적 소품으로만 활용된 것은 아니었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대규모 나치스 집회를 연 장소는 다름 아닌 맥주의 도시 독일 뮌헨에 있는 양조시설 호프브로이하우스의 대연회장이었다. 당시 상황은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1925)에 생생하게 기록됐다.
"나는 뮌헨 호프브로이하우스의 대연회장으로 들어섰다. 7시 15분쯤이었다. 그 순간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큰 기쁨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당시만 해도 내 눈에는 엄청나게 커 보였던 그 방은 순식간에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책에 따르면 중세 유럽의 수도원 대부분은 맥주를 양조했다.
수도사들은 제조한 맥주를 순례자와 방랑자들에게 제공했으며 직접 마시기도 했는데 간혹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시고 문제를 일으키는 수도사도 있었다고 한다. 영국 수도원의 계율에서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교회에서 성가를 부를 때 혀가 꼬여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과음한 자는 12일간 빵과 물만 먹고 마시며 지내면서 속죄해야 한다. 맥주를 토할 정도로 마신 자는 30일간 참회해야 한다. 성스러운 빵을 토해 낼 정도로 맥주를 마신 자는 90일간 속죄해야 한다."
책은 투명한 맥주잔이 등장하면서 밝은 색깔의 밀맥주(바이스비어)가 인기를 얻게 된 것을 비롯해 맥주의 생산과 소비에 영향을 준 여러 사건을 소개한다.
김수경 옮김. 4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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