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결과 정부와 집권당은 개헌과 탄핵의 마지노선으로 내몰렸다. 이런 참패는 대통령의 위기와 대통령제의 위기를 동시에 내포한다. 대통령이 원인이지만 리더십의 실패와 권력 제도의 실패로 구분되는 것이다. 단 모든 제도는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거 패배의 주원인으로 삼기 어렵다. 더욱이 현행 헌법이 27년 군부독재를 퇴장시킨 희생과 열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대전제다.
금번 총선에서 대통령 리더십 실패의 대가는 혹독했다. 영부인은 은신했고 이종섭·황상무·대파로 이어지는 용산발 악재로 열전의 날들이 저물었다. 야당은 역풍을 아랑곳하지 않고 공공연히 대통령 탄핵을 외쳤다. 그리고 집권당 후보들은 2년 차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
선거사에 전례가 없는 이런 장면은 충격을 넘어 실소를 자아냈다. 그 덕에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막장 공천에도 극강의 심판론이 총선을 뒤덮었다. 지지율 30%대의 대통령을 등에 업고 총선에서 승리한 집권당이 없다는 진실을 외면한 업보였다.민주화 이후 대통령의 흑역사는 참담했다. 7명의 대통령 중 5명이 임기 중에 집권당을 떠났다. 대개 탈당 형식이었으나 당원과 국민에게 버림받은 사실상의 출당이었다.
그리고 2명의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고 그중 1명은 파면되었다. 흑역사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가족 비리와 당정 갈등 그리고 국정 농단. 이 이슈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불공정과 확증편향이다. 그나마 집권 중반기 전에 당을 떠나거나 총선에서 참패한 대통령이 없는 것은 다행이었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실패는 더욱 엄중하고 새겨야 할 교훈이 무겁다.
대통령은 왜 실패하는가? 검찰총장이 야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반전 서사에 이미 답이 농축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까지 시종일관 4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최초의 권력이었다. 그러나 대선 정국에서 권부의 핵심축인 검찰총장, 감사원장, 경제부총리가 야권 후보로 등장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었다.
그리고 조국 사태와 검수완박의 불공정이 민심을 폭발시켜 권력 교체로 완성되었다. 따라서 2년 만의 기록적인 총선 참패의 원인을 바깥에서 찾는 것은 단연코 부당하다. 오히려 반면교사의 성찰을 외면하는 이율배반의 허물을 질책해야 한다.
대통령 실패의 두 번째 답은 강성 지지층을 일반 국민으로 호도하는 확증편향에 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의 속성은 한결같았다. 민주적으로 선출되었으나 권위적으로 통치하는 행태, 특히 검찰 출신 윤 대통령은 더욱 두드러졌다. 정치학자 오도넬(Guillermo ODonnell)은 후발 민주주의 국가에서 횡행하는 이런 통치 관행을 위임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로 명명하였다.
그 배경에는 선거 승리를 권력 독식으로 정당화하는 확증편향이 작동한다. 이후 비판적 국민과 언론 그리고 야당을 부정하고 지지층에 의지하는 관성으로 권력의 시간이 소비된다. 특히 강성 지지층의 높은 충성심은 위임민주주의를 자칫 선출된 독재로 악화시킬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권력 재창출에 실패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정부 출범 뒤 근 2년 만에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만났다. 이제 지지층을 넘어 국민을 만나야 할 시간이다. 그 첫걸음은 영부인과 채 상병 특검을 전향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반대 세력의 정략일지라도 국민의 보편적 정서이다. 또한 선험적인 법리 판단의 잣대를 거두고 객관적으로 규명하라는 것이 총선의 민심이다.
이어서 다음 걸음은 당정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정부와 집권당의 국정 동행이 더 이상 주종 관계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막후에서 당 지도부 선출에 개입하거나 당내 이견 집단을 연판장으로 핍박하는 행태는 근절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국민들이 있다. 묻지마식 지지와 반대를 넘어 생업의 현장에서 묵묵히 상식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이 평균적 국민의 눈높이에 순응하고 그간의 과오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이 이제 정치를 하겠다는 대통령이 성공으로 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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