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것은?

서광호 기획탐사팀장

서광호 기획탐사팀장
서광호 기획탐사팀장

한 해 72만 명을 죽인 '살인마'가 있다. 무섭게도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다. 흔히 볼 수 있고, 그래서 더 위협적이다. 생명을 앗아 가는 각종 질병을 무차별적으로 퍼뜨린다. 세계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동물로 지목된, 바로 '모기' 이야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모기가 해마다 72만5천 명의 목숨을 앗아 간다고 추정한다.

모기 다음으로 위험한 동물로 민물 달팽이, 살모사, 흡혈충, 전갈, 바다 악어, 코끼리, 하마 등이 손꼽힌다. 흔히 덩치가 큰 맹수가 가장 치명적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말라리아, 일본뇌염 등 질병을 옮기는 모기가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게 만든다. 진짜 위험한 것은 포악한 동물이 아니라 평소 접하기 쉬운 곤충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악어와 하마를 만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모기는 너무 익숙하게 접한다. 이처럼 모기의 사례는, 작지만 생활 속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위험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 준다. 겉보기에 무섭고 난폭한 동물은 삶과 동떨어진 공포감을 줄 뿐이다.

좀 더 우리의 일상에 가깝게 가 보자.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죽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통계청 사망 통계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2022년 기준으로 사망 원인 1위는 암(22.4%)이다. 2위인 심장 질환(9%)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다음으로 코로나19, 폐렴, 뇌혈관 질환, 고의적 자해(자살), 알츠하이머병, 당뇨병 등의 순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치명적인 것은 질병이다.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근심과 걱정'은 바로 본인과 가족의 질병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험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게 만드는 진짜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흉이고, 가장 시급하면서도 보편적인 문제다.

이러한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 현장의 중요성을, 최근의 의사 파업이 우리 사회에 알려 주고 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며 의사와 의대생이 사직서 제출과 현장 이탈, 휴학 등 집단행동에 나선 지 두 달이 넘었다. 그 사이 '의사 없는 병원'에선 환자들의 고통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응급실을 옮겨 다니다 사망하는 환자도 발생하고 있다.

여전히 정부와 의사 단체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지난달 국립대 총장들이 나서서 중재안을 제안했다. 의과대학 정원을 학교 상황에 따라 절반까지 줄여서 모집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건의였다. 정부는 이 중재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하지만 의사 단체들은 이를 거부했다.

끝없는 갈등이다. 마치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성 앞에서 "아이의 몸을 둘로 나누자"고 한 솔로몬 재판과 비슷한 상황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를 살리고자 양보를 택한 '친모'가 의대 증원 갈등에선 보이지 않는다는 것. 지금 한국에서 질병을 앓는 환자들은, 몸이 둘로 나눠지게 된 솔로몬 재판의 아이와 같은 처지다.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것은 질병이다. 그렇기에 사람을 가장 많이 살리는 것은 의사와 병원이다. 더 늦기 전에 꼬인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서로 한 발짝 양보하며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정부는 의대 증원 수를 못 박지 말아야 하고, 의사들은 의료 현장으로 조건 없이 복귀해야 한다. 한 번 죽은 환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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