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찾아 도쿄로 온 형제와 마주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내는 이야기. 요시다 슈이치의 '일요일들'은 잘 만든 옴니버스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설이다. '일요일들'은 사소한 일로 시작해 하나의 사건과 만난다는 점에서 영화 '크래쉬'와 닮았고 '바벨'과도 흡사하다.
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소설을 관통하는 건 부유하는 청춘, 말하자면 하나 같이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이다. 생활은 불안정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동거인은 불안하다. 이들의 직업이 홀서빙, 이삿짐센터 아르바이트와 세무사 시험 준비생과 파견직 사원인 까닭이다. 와세다대학을 졸업했지만 긴자 클럽에서 홀서빙 하는 다바타는 뭐하나 끝까지 해본 적 없는 과거를 끝내고자 한다. 이삿짐 아르바이트를 하다 실업자가 된 와타나베는 헤어진 애인을 잊지 못해 일요일 밤이면 쓰레기봉투를 내다놓는다. 나츠키와 치카게 편은 우정과 사랑의 딜레마를 전시하면서 약자에 무관심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아내와 엄마에 대한 기억을 절절히 토로하는 마사가츠와 아들 게이고는 데면데면한 부자지간을 묵직한 그리움으로 묘파한다. 마지막은 10년 살던 집에서 나와 15년을 산 도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리코의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이라고는 도쿄에 살거나 살았다는 것과, 어느 날 엄마를 찾아온 형제와 마주친 게 전부다. 인물들이 특정 시점의 기억을 되새길 때마다 도쿄라는 공간을 앞세우는 건 이 때문. 예컨대 "그것은 산겐자야의 한 아파트에 살 때"라든지 7, 8년 전 처음으로 도쿄에 올라왔을 때로 특정된다. 나츠키와 치카게는 도쿄로 돌아오는 신칸센 열차에서 형제를 마주치고, 마사가츠는 아파트 근처에서 서성이는 형제에게 스시를 사주며 다바타는 형제들 엄마의 주소지까지 전철을 갈아타면서 데려다 준다. 엄마를 만나지 못한 채 파친코 앞에서 서성이는 아이들에게 초콜릿과 타코야키를 건네는 건 와타나베의 몫이다. 결국 엄마에게 외면당한 어린 형제는 자립지원센터에서 (상담 차 방문한)노리코와 조우하는데, 노리코는 "절대로 너희 둘을 헤어지게 하지 않겠다"며 약속의 징표를 형제에게 건넨다. 이처럼 같은 시절 동일한 공간에서 분사된 인연은 형제를 관류한 후 각자에게로 되돌아간다. 실오라기 같은 기원을 담아.
'일요일들'이 처음 등장한 건 2002년이다. 소설은 장기불황에 접어든 일본사회의 공기를 시종일관 품은 채로다. 작가는 "남자직원의 결혼상대용으로 일반직 여직원을 채용하던 시대도 있었다고 들었다."는 노리코의 독백으로 버블경제 시절을 슬그머니 소환한다. 그 시절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자기 힘으로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었으니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럼에도 요시다 슈이치의 인물들은 미야베 미유키가 '화차'에서 보여준 '정체성 위기를 느끼며 대도시를 부유하는 유목민'과는 다른 길을 간다. 이를테면 타인에 대한 관심과 친절을 싹틔움으로써 시대의 피로를 희석시키려는 자발적 노력 같은 것. 책의 마지막, "지금부터는 십 년 동안 산 아파트의 열쇠를 부동산에 갖다주고 십오 년을 산 이 도시를 뒤로 한다.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라고 (중략) 그래,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야."라던 노리코의 읊조림도 같은 맥락일 터다.
돌이켜보면 내게도 분투하던 청춘이 있었고, 잠깐이었을지언정 좋은 일은 반드시 찾아왔다. 고단한 시절에는 누구나 찰나의 쾌감을 얼기설기 엮으며 넘어간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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