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지난 2017년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네트워크'의 일원이 됐다. 창의도시 네트워크는 도시 간 협력으로 경제·사회·문화적 발전을 장려하는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의 사업 중 하나다.
대구가 이처럼 유네스코 음악 창의도시로 지정될 수 있었던데는 대구가 지닌 음악자산의 우수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897년 제일교회가 설립되면서 손풍금과 오르간에 의해 성가가 불려졌다. 이후 1900년 3월 대구지역 제5대 선교사였던 리처드 헨리 사이드보담(Richard H. Sidebotham, 한국명 사보담)과 에피 엘든 브라이스(Effie Alden Bryce) 부부가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를 사문진 나루터를 통해 들어오며 본격적으로 서양음악의 역사가 시작됐다.
'고향생각'과 '가을밤'을 각각 작곡한 현제명과 박태준 등의 작곡가들이 대구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6·25전쟁에 함락되지 않은 점도 대구의 예술적 역량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됐다. 전국에서 모여든 예술이늘이 피란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녹향' 등 동성로 곳곳에 모여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나누고,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고, 레코딩 작업을 하며 수많은 문학·예술작품의 탄생시켰다. 이는 다시 대구의 예술이 타시도에 비해 월등하게 발전해나가는 기틀을 제공해 공연문화 중심 도시, 오페라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데 자양분이 됐다.
이같은 대구의 음악사를 한꺼번에 통찰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대구음악사 연구가로 유명한 음악사학자 손태룡 선생이 고희(古稀)가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난 30년 연구의 자료를 집대성한 또 한 권의 특별한 역사서 '음악박물관:도상(圖像)으로 읽는 음악사'를 펴낸 것이다.
대구음악사와 직, 간접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438장의 도판이 제시돼 있으며, 1827년 대구에 처음 서양음악이 전달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대구음악사 연보가 한국 근·현대사와의 대조표로 제시되어 있다.
옛날의 대구 구 도심의 모양부터 지금은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한 계산성당의 옛모습 등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워낙 다채로운 사진과 지도 및 악보와 음반 레이블 등의 사진을 담아 당시의 인물들과 대구의 음악 환경의 변천사를 생동감 있게 살펴볼 수 있어 사진만 보더라도 따분하지 않게 대구음악사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저자는1900년대부터 10년씩 한 단위로 나눠 연도별, 제목별로 음악사를 다뤘다. 130년 전 대구로 '음악'을 주제로 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대구 최초의 음악가인 박태원(1897~1921)이 1920년 당시 자선음악회에 출연해 당시 최고의 인기 성악가 윤심덕 보다 더 큰 호평을 받았다는 대목과, 박태준(1900~1986)이 계성학교 출신들을 중심으로 영남 4중창단을 조직해 활동했다는 부분, 영남 최초의 소프라노인 추애경(1900~1973)이 이화학당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모교인 신명여학교에서 음악교사 및 사감으로 재직했다는 등의 스토리를 통해서는 대구 오페라와 성악이 지금껏까지 어떻게 강세를 이어올 수 있는지 그 뿌리를 찾은 기분이다.
대구시향이 1963년 2월 20일 대구방송관현악단으로 첫 선을 보인 뒤 이듬해인 1964년 11월 25일 대구시립교향악단으로 창설됐다는 것도 처음 듣는 스토리다.
이 책의 서평을 쓴 작곡가 이철우는 "이같은 결실은 저자의 역사를 사랑하는 사명감으로 연마된 보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 이전에도 총 30편에 달하는 음악학 전문 연구서적과 300편이 넘는 음악사 관련 논문 등을 발표했으며, 새로운 한 자료를 발견하면 좋아서 밤에도 잠이 오지 않는다는 그의 학자적 사명감이 저작물들의 성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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