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어느 봄날 대구 범물동 1118번지(진밭길 409) 지산국민(초등)학교 범물분교.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산골 운동장에 언니 누나 동생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전교생이 함께 하는 예능시간. 노래에 맞춰 손뼉을 치며 예쁜 율동까지, 아이도 선생님도 빙글빙글 함께 돕니다.
오솔길로 오르는 해발 450m, 25세대 140여 명이 사는 옛 화전마을 진밭골. 분교가 없던 6년 전까지만 해도 찬 이슬에 나서던 20리(8km) 등굣길이 하도 험해 못 가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이제는 실컷 늦잠을 자고도 혼날 일이 없습니다.
전교생은 32명. 조경환(33)·서정희(21) 선생님 두 분이 도맡았습니다. 교실은 두 칸. 음악·미술·체육은 다 같이, 나머지는 3개 학년씩 한 교실에서 복식으로 배웁니다. 4학년이 수업하면 5·6학년은 자습하는 돌림식 수업에 가르치고 배우는 게 예삿일이 아닙니다.
더 큰 걱정은 시청각 교육. 칠판에 자동차를 그려 놓고 "부르릉~ 부르릉~" 발동 소릴 흉내 내 보지만 고개만 갸우뚱. 대부분 산중에서 나고 자라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봤어도 자동차는 본 적이 없습니다. (매일신문 1969년 6월 6일 자)
2년 전 부임한 조 선생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6학년인데 글을 모르다니…. "가갸 거겨~~하햐 허혀…." 붙들어 두고 될 때까지 외우고 쓰게 했습니다. 꼬박 한 달 만에 책을 읽더니 재미를 붙였습니다. 2학기부터는 오토바이 출퇴근을 접고 분교 사택에 눌러 앉았습니다. 하숙하며 밤낮으로 아이들을 불렀습니다. 박봉을 떼 사준 수련장으로 배우게 하고는 뒤돌아 시험을 쳤습니다.
선생님 말씀은 곧 법. 조 선생님은 더 특별했습니다. 카리스마가 철철 넘쳤습니다. 숙제를 안 해 간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 마주칠 땐 그림자도 피해 다녔습니다. 산중 밤길은 거뜬해도 선생님 눈길은 그렇게도 무서웠습니다.
진학은 생각도 못했는데 가망이 보이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해 중학 시험에 6명 중 5명이 떡 하니 붙었습니다. "이런 선생님이면 되겠다." 학부형들이 선생님을 붙들기 시작했습니다. 1년만 근무하면 시내로 돌아간다 했는데 다 틀렸습니다.
내친김에 선생님도 목표가 생겼습니다. 가축을 치고 나무를 길러 교재며 학용품까지 분교에서 해결한다는 자활학교.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젖 짜는 양을 키우고 벌통도 들였습니다. 교육청에 때를 써 분교 맞은편 개간하다 만 산 3,300㎡(1천평)을 사들이고는 학부형 손을 빌려 약초를 심고 밤나무를 키웠습니다.
55년이 흐른 지금 그때 그 밤나무는 아름드리로, 분교 자리엔 청소년 수련원이 섰습니다. 수소문 끝에 진밭골 대학생 1호 장윤섭(69·한국안전관리 대표) 씨를 만났습니다. "6학년 때 조 선생님을 만난 게 제 인생의 행운이었지요. 무지의 틀을 깨준 분이셨어요". 그는 그때 인연을 지금껏 잇고 있었습니다.
"그래 맞아! 여기서 4년을 근무했지…." 88세 고령에도 조 선생님은 옛 사진을 보자마자 어제처럼 떠올렸습니다. "신명으로 일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지도해야 좋은 학생이 나와…." 선생님은 "다시 태어나도 교단에 설 것"이라 했습니다.
1969년 대한민국 교육의 끝자락 산골 벽지(僻地) 분교. 모든 게 부족해서 더 절실했던 선생님. 시련이었지만 누군가엔 인생의 행운으로 다가왔던 그 이름. 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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